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18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10-10 10:58
조회수: 129
 

179. 1998년 9월 13일, 오늘은 53년 전 내가 결혼한 날이다. 그러니까, 1945년 7월 약혼을 하고 해방이 되어 양쪽 집의 약속대로 9월 13일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빈털터리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둘이 다 고급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두 손, 두 손 합하면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다. 신부에게 주는 예물로는 어머님이 끼고 계시던 은가락지를 개조한 것으로.
  53년간 같이 살고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성격차로, 취미차로, 인생관차로, 서로 강한 자존심으로 많이도 싸웠지만, 서로 인내로, 인내로, 한 집안을 지켜왔다. 아이들이 있는 집안에서 이혼은 절대로 죄악으로 여기고.
  실로 아내와 나는 현실과 꿈의 싸움이었다. 물질과 정신의 싸움이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현실과 이상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정’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잘 용해시켜서 그런대로 조화롭게 한평생을 살아왔다.
  이러한 현실(아내)이 주는 고독 속에서 나는 많은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많은 생각은 나를 시의 세계로 깊이 밀어 버렸던 거다. 다시 말하면 현실(아내)이 주는 고독은 나의 시를 다산시킨 거다.
  나는 외로움을 견디는 수단으로 시를 써 왔다. 이러한 내 개인적인 운명이 주는 고독과 내가 처하고 있는 한국적 역사의 비극이 주는 고독 등이 범벅이 되어 나의 존재는 시로서 응결 되어 버린 것이다.
  실로 나의 일생은 이러한 고독과 운명, 그것과의 긴 투쟁사였다. 그러한 투쟁이 이어지면서, 그 많은 작품이 생산되었다. 그 속에서 스스로 위로받으면서, 부지런히, 실로 부지런히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내가 이렇게, 이러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실로 눈코 뜰 사이 없이 시간을 다퉈 가면서 살아 왔다. 아내에 대한 고마운 점도 많고.
(『편운재에서의 편지』, 1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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