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57호 절벽 (2010년 8월 10일)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0-08-11 15:11
조회수: 4157
 
                    절 벽

                                                       조병화

                     ‘육지의 끝, 바다의 시작’
                     그 옛날 포르투갈 시인이 외쳤던
                     유라시아 대륙의 마지막 절벽
                     까마득한 절벽 아래서
                     대서양이 부서진다

                     아, 이 절벽
                     이 바람
                     이 구름
                     시인은 항상 그 절벽에서 도는 게 아닌가

                     동경 9도 30분
                     북위 38도 47분

                     이곳은 포르투갈, 카보 다 로카
                     하늘 높이
                     시의 귀절이 솟아 있는
                     탑의 절벽

                     방랑과 망향

                     인간의 꿈과 절망이 감돌던 곳
                     그곳에 서서
                     나는 나의 한계를 잰다.

                    

                                                 조병화,『머나먼 약속』
  

     나는 어린 시절, 지리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안 가본 곳을 가고 싶었던 것이다. 미지의 그 지역을 가고 싶었던 것이다. 되도록 먼 곳을, 아주 먼 곳을.
    이렇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뜨거운 동경심을 누구나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자연의 세계에서 영혼의 세계에서.
    예술이나 철학, 그 근본 정신은 이러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개척이며, 모험이며, 실현의 희열이 아닌가. 기초 과학의 세계도 매한가지로 생각이 되는 것이다. 새로움의 발견, 새로움의 경험처럼 즐거운 것이 또 있으랴.
    포르투갈의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의 절벽 위에 솟아 있는 ‘육지의 끝, 바다의 시작’이라는 시의 탑에서 쓴 시이다. 얼마나 낭만적인 말인가. 실로 그 시절엔 이곳이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망망대해인 대서양, 그 바다의 시작이 아니었던가. 이 시를 쓴 포루투갈의 시인만이 아니라 육로와 바다만을 살던 그 시대에 있어선 이 절벽이야말로 한 한계선이었던 것이다.
    절망과 포기,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대망을 향해서 인간의 의지는 또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드디어 내 인생에 있어서 이곳 ‘육지의 끝, 바다의 시작’까지 왔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여행을 하고 싶었던가. 어린 시절의 꿈이 그런 대로 잘 풀려서 실로 많은 여행을 했다. 이제 그 지구를 되도록 많이 여행하고 싶었던 그 욕망은 어느 정도 다 이루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정신의 미지의 세계이다. 무궁 무진한 그 신비의 세계, 어찌 그걸 다 경험할 수 있으리. 그러나 나에게 배당된 이 목숨 다할 때까지 쉬지 않고 더듬어 들어갈 뿐이다.

                      조병화,『버릴거 버리며 왔습니다』, 문단과 문학사, pp. 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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