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29호, 출발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2-01-09 12:42
조회수: 3366
 

경기 남부, 작은 농촌 마을에
꿈이 많은 소년이 있었다.

자라면서 소년은
낮엔 산이나, 들이나, 개울이나,
혼자 다니면서 들짐승들을 쫓아다니기도 하고,
산새들의 둥지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이상스러운 꽃들을 모으기도 하고,
송사리, 가재, 산새 새끼들을 잡기도 하고,
어머님하고 산나물을 하러 높은 산에도 오르고,
흙처럼, 들풀처럼, 바람에 날리기도 하면서

밤엔 반딧불을 쫓아다니기도 하고,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망석에 누워
먼 하늘에 떠도는 무수한 별들을 헤어보기도 하고,
쏜살같이 떨어지는 별똥을 쫓아가기도 했다.

학교에 가는 길 십 리,
학교에서 오는 길 십 리,

가다가 비가 와서 개울이 넘친 날엔
그냥 되돌아오다가 방앗간에 들러서
아이들하고 딱지를 치기도 하고,
도시락을 다 먹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활을 쏘기도 하고, 연을 날리기도 하고,
쥐불을 놓고 윗마을, 아랫마을과
패싸움도 하고, 뒷동산에 올라서
정월 대보름 달맞이도 하고,
남사당, 두레꾼들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용인군와 안성군의 군계에 우리 난실리가 있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용인군 이동면 송전리까지는 걸어서 10리가 되는 거리였습니다.
   이곳을 매일 나는 걸어서 다녀야 했습니다. 가는 길에 개울이 있었습니다. 공동묘지도 있었습니다. 그 개울 이름이 송전천(松田川)이었습니다. 장마의 계절, 비가 많이 내려서 개울이 넘치고, 다리가 끊어지면 그곳까지 갔다간 도로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 날도 출석으로 해 주었습니다. 공동묘지 앞을 지나가는 것이 무서워서, 사람이 오는 걸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자동차는 가끔 이곳 송전에서 보곤 했습니다. 아주 드물게 이곳까지는 자동차가 경부선 오산(烏山)에서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 운전수가 나에겐 참으로 멋있게 보이곤 했습니다.

   걸어서 다녔지만, 마차가 유일한 운반 수단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나는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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