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49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3-01-24 14:37
조회수: 40
 
소 식

                                      
영하 10도 부근을 오르내리는
어둡고 긴 겨울을
깊은 땅 속에서
깊은 나뭇가지 살 속에서
눈을 뜨고 봄을 기다리는
맑은 싹들의 생기를 생각하며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노라면
문득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
그분은 늘 그렇게
찬물로 긴 겨울을 씻어 내셨던 것이 아닌가

하얀 옷으로
하얀 손으로
하얀 사랑으로.


-----------------------------------------------------------------------------

詩想노트

요즘은 겨울이 그리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춥지 않아서 나에겐 견디기가 용이합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버릇이 있습니다.
때문에 겨울이 오면 올 겨울을 어떻게 지내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곤 하는 겁니다.
옛날엔 참으로 추웠습니다. 나의 유년 시절엔 내복도 없어서 참으로 겨울을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 못해서 그저 어머님이 내주시는 내복을 입고 아무런 불평없이 지내곤 했습니다. 워낙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저 모든 걸 참고 지내야 했습니다.
나는 그러한 말이 없는 집안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말을 할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있다면 어머님뿐이었습니다.
그 어머님은 우리들 형제들을 데리고 그리 넉넉치 못한 살림을 꾸려 나가시기에 항상 바쁘셨습니다. 항상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찬물 같은 가난이었습니다. 그 찬물 같은 가난을 찬물로 세수를 하시며 건강하게 우리를 키워내셨습니다.
어느 겨울날 아침 나도 찬물로 세수를 하다가 손이 시려 머물고 있는 찰나, 문득 어머님의 하얀 옷차림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하얀 옷, 그 하얀 손, 그 하얀 사랑, 실로 어머님은 나에게 있어서 하얀 이미지였습니다.
어머님은 세수를 하실 때도 비누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어머님이 하신 것처럼 세수를 할 때 비누를 쓰지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혜화동 집은 40년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집이라 온수 순환이 잘 되지 않아 아침마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있는 형편이며, 나는 목욕할 때 아니면 습관처럼 비누를 쓰지 않고 있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항상 어머님이 견디신 겨울을 체험하기 위해서.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엔 참으로 추웠었습니다. 영하 15~16도가 보통이었습니다. 그 영하 15~16도의 겨울을 매일 아침 제일 먼저 일어나셔서 일을 하셨습니다.
차가운 겨울, 차가운 공기, 차가운 물, 차가운 살림, 그것을 어머님은 사랑 하나로 따뜻이 녹이면서 우리를 키워내셨습니다.
요란한 사랑이 아니라, 숨어서 흘러내리는 가슴 안의 사랑으로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어머님의 눈물이며, 어머님의 꿈이며, 어머님의 시이며, 어머님의 고운 입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시에 어머님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시를 쓰다가 어느 대목에서 막힐 땐 꼭 어머님이 나타나셔서 그 어머님으로 하여 문장이 전개되곤 했습니다.
실로 어머님은 나의 시론이며, 시의 원천이며, 항상 푸르게 흐르고 있는 강이옵니다.
시가 나의 종교로 가는 길이라 하면 실로 어머님은 나의 종교입니다.
    
△ 이전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50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 다음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48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en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