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50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3-01-27 14:54
조회수: 103
 

소년에게

                                    
너는 무엇보다도 먼저
죽음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는 네게 죽음이 와서
이제 가자, 하는 말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노력한 만큼 밝은 곳으로 갈 것이 아닌가

어둡고, 캄캄하고, 보이지 않는 우주
죽어서 혼자 가는 길

어떻게 떠날 것인가
때로, 때때로, 생각해 볼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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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노트

나의 인생은 '죽음'으로부터 출발을 했습니다. '낳음'에서부터 출발을 한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출발을 한 것입니다.
죽음을 아는 것부터 인생을 시작한 겁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라는 대명제로부터 인생을 시작한 겁니다.
인간만 죽겠습니까,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어 사라져 버리는 것이란 생각으로 인생을 시작한 겁니다.
인간도 한동안 살다가 죽어서 사라져 가는 것, 그럼 죽을 때까지 나는 무엇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부터 내 인생을 시작한 것입니다.
경성사범학교 기숙사에서 이러한 생각을 했고, 그 생각으로 인생을 출발하여 오늘날까지 그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죽음하고 같이 살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도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죽음하고 같이 살아갈 것입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나를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남을 사는 것이 아니고, 나 아닌 다른 것을 사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굳은 생각(인생관)으로 항상 부지런히 나를 찾아서 살아온 겁니다.
그러기에 나 이외의 나는 없는 겁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서른일곱 권의 시집을 냈고, 수많은 수필을 써왔고, 수많은 그림을 그려왔지만 그것은 나라는 한 권의 시집이며, 나라는 하나의 수필집이며, 나라는 하나의 그림 세계였습니다.
테마도 나이고, 소재도 나이고, 문장도 나이고, 그 테마, 소재,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것도 다 나 자신인 겁니다.
나는 나를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소외되고, 고독하고, 그립고, 쓸쓸하고, 허전한 겁니다.
실로 긴 세월을 그 소외와 그 고독과 그 그림과, 그 쓸쓸함과 함께 살아온 겁니다.
그러기에 나의 시엔 이러한 소외감, 고독감, 허무감, 그리움, 쓸쓸함이 많이 밀도 있게 깔려 있는 겁니다.
또 시라는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고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 이외 것은 전연 모릅니다. 사회변화도 그리 모르고, 역사의 변천도 그리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세계는 더욱이나 모르고, 다만 그런 거지, 하는 느낌으로, 짐작으로, 인생무상(人生無常) 바로 그것만은 확신한다는 생각으로 그 무상의 작업을 하여 온 겁니다.
때문에 나의 철학은 무상(無常)의 철학이며, 절대고독(絶對孤獨)과 절대허무(絶對虛無)의 공(空)의 철학입니다.
나의 시의 세계는 이러한 철학의 구름으로 출발한 하늘이옵니다. 인간은 죽음을 알아야 인간을 살 수 있고, 살 줄 알고, 행동이 견고해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시의 세계에 있어서는 더구나 철저하게 그 절대적인 고독과 허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나는 시를 쓰고 있는 겁니다.
나의 인생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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