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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떠남과 머뭄의 미학 / 박이도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5-04-10 18:14
조회수: 6082 / 추천수: 125
 
떠남과 머뭄의 미학/박이도(시인,경희대학교 교수)
  --조병화 전집 6권(학원사,1988)에서 부분 발췌

때론 소유하면서
때론 상실하면서
그 허망을 갈망하면서
                   -<남남 15> 부분

  조병화의 시적 구조는 독백의 스타일에 의해 이루어진다. 독백이란 대화의 한 갈래이다. 말하는 주체와 듣는 객체가 있을 때만 대화는 이루어진다. 독백도 한 인간의 내부에서 긍정적인 자아와 부정적인 자아의 대화인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ꡐTo be or not to be……ꡑ로 된 독백문은, 햄릿의 내부에서 긍정, 부정의 두 자아의 싸움인 것이다. 결국 이것은 변증법적인 해답을 유도해 낼수 있을 것이다. 내부로부터 폭발하는 인간의 문제, 그것을 조병화는 대화의 양식으로 풀어 간다. 그 하나가 외형적인 너와 나라는 다이얼로그이며 또 하나는 대화 형식인 모놀로그이다.
  인용한 <남남>의 15편 가운데의 ‘소유’와 ‘상실’이란 긍정과 부정의 내재적 갈등의 표상이다. 그의 많은 시편들이 이같은 독백의 양식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이어서 ‘허망을 갈망’함은 변증법적인 차원의 순수 감정이다. 이같은 순수 감정의 명제화 현장은 자아의 심층에서부터 발생하는 가장 인간적인 귀향 의식에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모성애이며, 그것을 확대해 보면 자연에의 고향 의식, 즉 귀향 욕구의 순수한 서정화인 것이다.
  원형 이론 이전에 이미 있었던, 대지는 인간의 어머니라는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면, ‘푸름’이 전제된 자연의 영원한 모성애적 인품을 저버릴 수 없는 절실한 대상이 된다. ‘너와 날 묻을/ 푸른 대륙’이기를 희망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장 본능적인 인간의 욕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가 추구해 가는 세계는 인간적 고뇌에서 그것을 극복해 가는 자연에의 귀화를 꿈꾼다. 이는 자아의 세계가, 우주적인 세계로 비상하는 결과를 빚어낸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육안과 심안<혹은 직관>의 세계를 넘나드는 초월의 세계가 전개된다.
  다음, 조병화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국면은 사물을 그 자체로 묘사하지 않고 관념적인 환유의 수법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즉 푸름으로 드러나거나 물로 드러나는 화자의 이미지는 선명하다.
  
  밤을 새우는 물이 있다
  뜬 눈으로 주야 도는 물이 있다
  구름을 안는 물이 있다
  바람을 따라가는 물이 있다
  물결에 처지는 물이 있다
  수초밭에 혼자 있는 물이 있다
                  <호수>
  물의 이미지를 이처럼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결국 이 시에서 ‘물’은 화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한 인간의 이미지가 동시에 드러나며 물 그 자체의 이미지와 인간의 이미지가 이중으로 떠오른다. 짙은 질감의 대상이 캔버스에 부각되는 느낌이다. ‘달이 지고/ 별이 솟고/  풀벌레 찌찌’ 우는 물가의 실상이 ‘이야길’하고 ‘장을 보는’ 물의 이미지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이같은 단순 이미지들의 마지막 줄인 ‘수초에 혼자 있는 물’에서 인간의 의식으로 환유되어 생각하는 의미를 불러 일으킨다. 즉 실재의 화자나 인간을 등장시키지 않았으나 매우 뚜렷하게 파악되는 지시성을 지닌다. 현실적으로 부재하는 사물이 현존하는 것 같은 것은 상징의 일환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하나의 사물에 다른 사물들을 결부시켜 중의의 효과를 얻는 수사법이 된다. 이 시에서 ‘물’은 매우 다양한 이미지와 암시성을 제기케하여 상상의 여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물이 대상화되어 있으나 만감에 사로잡혀있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램프>에선 동화적인 수법으로 사실적인 이미지를 제기한다.

  어드메를, 지금
  피하며 피하며 늑대가 지나간다
  ……(중략)
  멀리 떠나 버린 시간 속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

  여든 한 살을 그렇게 사시다가
  두고 가신 자리

  램프는 산중에 그대로
  혼자서
  긴 밤을 가는 사람이 있다
                         <램프> 부분

  ‘램프’는 시간적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고 영원 속의 한 연대기로 제시된다. 이는 ‘옛날 옛날 고래적 옛날에……’로 시작되는 우리네 옛날 이야기의 시간 개념처럼 매우 신축성이 있으므로 신비감을 더해준다.
  ‘어드메’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아닌 공간, 독자가 자의로 상상해 내기에 충분한 그곳에 늑대만이 아니라 여우도 지나고 밤비도 지나간다. ‘램프’가 켜져 있는 산중에 끝없는 시간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그 ‘램프’의 곁을 떠난 어머님이 사시던 ‘빈자리’를 ‘램프’가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같은 시간의 역사를 지닌 ‘램프’의 곁을 지나는 사람, 그는 어두운 밤을 가고 있으므로 ‘램프’의 이미지는 움직이는 여러 개의 이미지로 활성화되고 있다. 동화 속의 신비한 공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호기심과 두려움, 도덕적 자각과 끝없는 방랑의 이미지들이 ‘램프’ 속에 살아 있어서 한없이 이어가는 시간적 여울 속에 숙연히 떠나는 인생의 모습, 나그네의 허전한 인상을 심어 준다.
  조병화의 시가 지닌 형식의 특징으로 ‘너’와 ‘나’라는 대화의 구조,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육신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가 동시적 세계에 공존하는 구조, 떠남과 만남의 구조 등을 들 수 있다.
  ‘너’와 ‘나’의 구조는 그의 가장 전형적인 시적 전개 양식이다.

  네 눈에서 날 본다
  ……(중략)

  널 모르면서
  날 모르면서
  따로
  따로
  이 존재
  이 존재

  이 존재에 기거하며
  보이지 않는
  너와 나
                       <남남 33> 부분
   여기서 읽게 되는 ‘너’의 정체는 육신의 상대가 아닌 철학적 명제에 해당한다. ‘너’가 존재하는 것은 ‘나’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며, 두 존재는 항상 영혼과 육신의 관계처럼 서로 일치되어야 하지만 일치되지 못하는 거리를 갖고 있다. 그 거리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성질의 것일 수도 있다.
  가령 한용운의 심적 존재 방식인 ‘님’이란 구조의 시들이 이성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대상이었다면 조병화의 ‘너’는 이성적이나 인간적인 차원의 비원의 대상인 것이다. ‘네 눈에서 날 본다’고 전제했으나 결코 서로를 모르며 따로 따로인 채로 존재하는 남남의 관계, 이것은 인간의 비극적인 불완전성인지도 모른다. 또 ‘너, 나, 떠나면/ 누가 널, 날, 이야기하리’라는 대목에서 인본주의적이며 현세주의적인 애절한 인정의 야속함을 눈물처럼 뿌려준다. ‘너’라는 대상이 그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한 시의 샘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에로
  우리 서로 따로 이살 떠나면
  우린 서로 주소도 모르리
             <남남 39> 부분
    ‘너’와 ‘나’의 구조가 외부적으로 드러난 양식이라면 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암시적 대화는 보다 섬세하고 내밀한 마음 속의 흐느낌이다. 보이는 세상에서 못 다한 인정의 욕구, 그 미련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시는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가 동시에 떠오른다. 죽음의 세계로 통화를 나누고 (‘우린 서로 주소도 모르리’의 숨겨진 기대감), 죽은 자와 체온을 맞부빈다 (‘가혹한 이 부재/ 살을 대며 넌 날 감지하지 못한다’의 반어적 긍정). 너무나 인간적인 인정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다음으로 그는 떠남과 머뭄의 미학을 획득하게 된다.
  이별의 아픔도 시간의 허무도 고향의 그리움도 모두 인간의 숙명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그 인간은 고독한 존재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너와 내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의 양식은 인정의 현실에서 죽음의 저승을 동시적으로 공존시키고, 떠남과 떠나 보냄의 감정을 형상화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이것은 그의 초기 시편인 다음 구절을 통해 이어진 시정신의 소산임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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