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램프 / 조병화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6-07-12 10:45
조회수: 3340 / 추천수: 68
 
램프

                      조병화



비가 지나고 있는
창가에
램프는 홀로 있다

몇 시나 되었는지
시계 없어
산중은 더욱 캄캄하다

대수롭지 않은 생각에 잠겨
검은 밤
주인도 홀로 있다

밤은 무서운 것
유년 시절부터
밤은 더욱 가까이 있는 것
램프 곁에 있다

나무 사이에 울리는
바람소리
빗소리
마을은 산 아래 저쪽에 있다

생각이 잘못 든 것은 아닌가?

산 위에 산 아래
창가에
빗소리, 바람소리
램프는 홀로 있다

-제20집《먼지와 바람 사이》에서





  유리창 밖으로 비 내리는 밤이다. 창가에는 램프가 홀로 타오르고 있다. 이 순간 세상의 중심은 어둠을 밝히는 램프가 아닐까. 위로 타오르는 램프의 불꽃은 지난날의 기억들을 불러온다. 의식 저 아래 깊숙이 침전하였던 기억들이 램프의 불꽃마냥 가볍게 상승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둠을 밝히는 램프는 자신의 기억을 떠울리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쏟아지는 기억들”, “타오르는 램프의 불꽃” 속에서 휘청거리는 시인은 현재의 시간을 알 수 없다. 다만, 홀로 타오르는 램프의 불꽃처럼 고독하게 혼자 남은 자신의 존재만 분명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이때 시인/램프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창문 바깥으로 내몰린다. 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바라볼 수는 있지만 결코 다가갈 수는 없는 세계, 그러니까 ‘이 쪽’ 아닌 ‘저 쪽’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마을은 산 아래 저쪽에 있다” 그리고 “램프는 홀로 있다”. 홀로 있는 램프와 저 쪽에 있는 마을 사이의 단절이 깊어질수록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지 않을까.


-해설/홍기돈(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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