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92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07-08 14:27
조회수: 177
 
153. 내가 혜화동에서 명륜동으로 이사를 하던 날에 눈이 펑펑 내렸다. 참으로 비는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큰일을 할 때마다 번번이 비(눈)가 내렸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던 날에도 비가 내렸고, 결혼을 하던 날에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고, 처음으로 경성사범학교로 출근을 하던 날에도 비가 내렸고, 이사를 할 때마다 그때도 비가 내렸다. 실로 혜화동에서 명륜동으로 이사하던 날에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함박눈이 갑자기, 순식간에, 왕방울만한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새삼 느꼈다.
  하긴 어려서 어머님이 항상 “너는 용왕의 자손이다”하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큰 비늘이 있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까지 하면서, 특히 잉어 고기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잉어는 영물이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거북이도, 자라도. 잉어도, 거북이도, 자라도 다 용왕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때가 되면 늘 물고기들을 방생하시곤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성장을 했지만, 이 원시적인 어머님의 말씀을, 나는 남의 고기를 먹을 때마다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어머님 말씀대로 비늘 큰 물고기는 먹지 않았다. 이러한 원시적인 신앙으로 사는 것도 나름대로 무슨 뜻이 있는 것 같다.
(『외로우며 사랑하며』,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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