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22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11-08 15:51
조회수: 260
 
83 시드니, 왓손 베이에서

이곳 왓손 베이는
홀랑 벗은 남자와 여자들이
바다와 태양을 온몸으로 즐기는
누드촌村
안내를 받아 온 곳이
바위의 절벽 아래다

늙은 사람들도 젊은 사람들도
아이도, 어른도
알몸으로 나뒹굴거리고 있는 비치

벗어도 벗어도 욕망이 다 차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멀리 시드니의 시가지
스카치에 목이 탄다.

                            시집 『딸의 파이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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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드니에서 우연히 서울고등학교 시절의 제자 두 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곳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있다고 하고, 한 사람은 뉴욕에 거주하면서 이곳 호주까지 장사를 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울고교 시절의 동기동창이며 나의 수학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P.E.N. 대회장인 호텔에 찾아와서 대단히 반가웠습니다. 하두 오래되어서, 그 이름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늙었지요. 회상이라는 것도 이렇게 되어서 망각의 저편으로 소멸되어 가는 거지요. 아름답던 그 사랑의 추억들도. 인생처럼.
  그러기에 인생이 먼지요 허무요, 지나가는 바람이요, 뜬구름이요, 하잘것없는 지나가는 시간이라 하는 것이겠지요
  두 사람의 안내로 이곳 나체촌이라는 왓손 베이(Watson bay)를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호기심에서였지요. 이 무렵 세계에서는 이러한 나체촌이 여러 나라에서 유행처럼 보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며, 원시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탈문화 (脫文化)의 풍조라고 생각이 되기도 했습니다. 막상 이곳까지 찾아왔지만 이곳 나체촌에 들어가려면 자신도 옷을 몽땅 벗어야 했습니다.
  이곳 나체촌의 규칙이지요. 우리들은 하는 수 없이 되도록 가까운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기로 했습니다.
  푸른 물결이 파도치는 넓은 바다의 넓은 모래사장, 그곳에 과연 남녀 수천 명이 모두 빨가벗고, (완전 나체가 되어)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맑은 태양 아래서의 완전 나체들의 난무. 그곳엔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고, 수치도 없고, 윤리 도덕도 없고, 남녀 노소도 없고, 그저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자연뿐이었습니다.
  또한 그곳엔 체면도 없고, 위선도 없고, 시기도 없고, 귀천도 없고, 명예나, 계급이나, 권위나, 허세나, 금전이나, 가면이 없는 그대로 알몸으로 뒹구는 사람의 마을이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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