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21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11-08 15:50
조회수: 271
 
82  시드니, 킹스 크로스에서

서울은 지금 눈이 내리고 있겠지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겠지
어수선한 연말이 다가오고 있겠지

나는 지금 이곳 시드니
킹스 크로스 모퉁이, 작은 공원에서
잠시 쉬고 있는 여름

비둘기 아닌 갈매기 떼들
기운찬 갈매기 떼들이 물결치는
공원 잔디밭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낮잠을 잔다

천하 태평이라는 말이 있다.
이곳에서 갈매기와 지내며, 이젠
세상엔 일이 없는 사람들
모든 걸 버린 사람들만이
그걸 산다

서울엔 지금 눈이 내리겠지
총총걸음으로 연말을 살겠지
부딪치며, 부딪치며.

                             시집 『딸의 파이프』 에서
-----------------------------------------------------------------------------
  이 작품도 제 24시집 『딸의 파이프』(1978.6.15. 일지사)에 실려 있는 작품의 하나입니다. 1977년 연말쯤해서, 국제 P.E.N. 대회가 호주 시드니에서 열렸습니다.
  호주를 구경할 생각으로 참가했습니다. 호주 P.E.N. 대회 회장 내에선 김지하 시집(金芝河詩集)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선전 삐라처럼 나돌고 있었습니다. 김지하 시인 석방 운동의 하나였겠지요. 이통에 한국 대표들은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대회장이 마침 이 킹스 크로스 공원 근방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수시로 이 공원에 나가서 비둘기 아닌 갈매기들을 스케치하곤 했습니다.
  이곳엔 포르노 극장이 많고, 매춘부들이 많아서 대단히 이색적인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포르노 극장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거리의 매춘부들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곳은 아주 노출적이었습니다. 생존의 애수가 감도는 곳이지요. 확실히 섹스는 생명, 혹은 생존의 애수입니다.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미로운 애수의 철학이지요. 가식이나, 위선이 없는 바닥의 인간을 나타내는 그대로의 인간, 그 인간의 애수라 하겠지요. 웬일인지 나에겐 그러한 일종의 애수의 미학으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화가나, 시인, 소설가 들) 매춘부들의 독특한 매혹을 그리고 있는 그 이유가 이러한 생존의 애수 같은 미학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확실히 이러한 매춘부들의 육체는 매혹적인 애수라고 하겠습니다. 그 미학이지요.
  시드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 중의 하나라 할 만큼 아름다운 절벽과 바다를 가지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저 보이는 것이 바다이며, 다리이며, 숲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한가롭게 보이며, 넓고, 높은 공간이었습니다.
  방콕, 싱가포르, 시드니. 약 8시간의 비행 거리, 비행기 내엔 희랍인들이 많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호주로 이민을 간다고 했습니다.
    
△ 이전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22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 다음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20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en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