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09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9-22 16:23
조회수: 258
 
70 때때로 생각나는 당신 말씀

때때로 생각나는 당신 말씀
말씀 중의 말씀
‘죽으면 썩을 살 애껴서 무엇하니’

이제 좀 쉬십시오
일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젠 고만,
말씀드리면
‘놀면 무어하니
살면 얼마나 산다고
죽으면 썩을 살’

아침을 누구보다 일찍이
밤을 누구보다 늦게
하루를 온종일

추운 겨울에도
무더운 여름에도

부지런하시던 당신
그 말씀 그 모습

제 방에 불이 꺼져야
불 끄시고 주무시던
그 말씀 그 모습
살아서 이 살 다 쓰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야지
홀로 잠자리에 드시던 당신
그 말씀 그 모습

내일 아침엘랑 좀 늦게까지 쉬시지요
일하는 사람이 송구스러워합니다.
오냐 알았다
그러나 마당이구 부엌이구 뒤뜰이구
말끔히 몽땅 치워 놓으시는 건 당신
아, 날마다 날마다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때때로 생각나는 당신 말씀
말씀 중의 말씀
‘죽으면 썩을 살을’.

                          시집 『어머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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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1973년에 출판한 제 21시집 『어머니』(1973.12.25. 중앙출판공사)에 수록되어 있는 31편 중의 하나입니다.
  어머님이 1962년 6월 2일(양력)에 작고하신 후, 그분이 나에게 보여 주신 생애가 늘 나의 머리 속에 짙게 남아서, 그 어머님의 행동이 말(言語)로 이어져 나오는 것을 자동기술처럼 서술, 시화(詩化)한 것이 이 『어머니』라는 시집으로 엮어져 나온 것입니다.
  어머님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 어머님이 살아가시는 생활 행동이 ‘부지런히’, ‘정직하게’, ‘네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 하는 식으로 보였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행동이 언어로 나에게 전달이 되었던 겁니다. “살은 죽으면 썩는다” 하시며 살아가시는 그 모양이.
  이러한 어머님의 행동이 나에게 암시해 주는 그것을 일일이 ‘말씀’으로 옮겨서 이 시집을 엮은 것입니다.
  어머님의 철학은 불교이고, 그 생활 철학은 “살은 죽으면 썩는다”, 하는 근면, 절약, 그 철학이었습니다. 나는 소년 시절부터 성장하면서 이 어머님의 생활 철학대로 시간을 아껴가면서 매사 부지런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어머니의 묘막(墓幕)으로 어머님 묘소 옆에 세워드린 집 흰 벽에 오석에 이 말씀 "살은 죽으면 썩는다”를 새겨서 붙여드렸던 겁니다.
  집은 편운재(片雲齋)라고 이름 짓고 벌써 3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편운(片雲), 그 조각구름처럼 떠가는 세월입니다.
  내가 오늘날까지 철저하게 ‘시간’을 지켜오는 생활을 해오고 있는 것은 이 어머님의 영향입니다. 일분 일초도 낭비하는 일이 없이, 철저하게 살려가며, 일해 오는 부지런한 생활,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보고이고, 나의 기록이며, 나의 인생,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영향을 하나 받은 것 없이 오로지 어머님의 그늘에서 어머님처럼 그저 묵묵히 인생을 인생답게 충실히 살아온 것뿐입니다. 정상적으로 문학하는 것 이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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