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78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8 13:21
조회수: 163
 
39 파리

        향수와 연초 냄새 짙은 유럽 하늘 아래서
        노트르담은 나이를 먹고
        센은 사랑을 적시며 늙을 줄을 모른다

        지지리 못생겼으나 목석이 아니어서 슬펐던
        쓸쓸한 나의 벗은
        지금 종소리 속에 간 곳이 없고
        사랑은 남아서 노래를 기른다

        애인은 바뀌어도 센은 그저 흐르는 것
        시간을 여행하는 나의 마음이
        센에 비쳐서 내가 흐른다

        에뜨랑제 — 란 인간을 말하는 것
        온 곳도 모르고 갈 곳도 모르는
        나는 순수한 코리언
        멀어서 마냥 슬픈 사람
        손이 비어서 마냥 허전한 나그네

        향수와 연초 냄새 짙은 유럽 하늘 아래서
        노트르담은 나이를 먹고
        나는 인간 나그네
        센은 사랑을 적시며 늙을 줄을 모른다

                                   시집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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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서 프랑스로 건너왔습니다. 줄곧 우리는 PAA(판 아메리카) 항공사의 손님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프로펠러 비행기였습니다. 제트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에펠 탑이 있는 부근에 호텔을 잡고, 지도와 안내기로 길잡이를 삼아 매일 도보로 파리 구경을 다녔습니다.
  주요섭 선생은 길눈이 어두웠습니다. 심심풀이로 놀리곤 했습니다만, 지금 내가 그렇게 당시의 주요섭 선생처럼 길눈이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방향감각이 둔해진 겁니다. 주요섭 선생을 놀린 죄를 지금 내가 받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그렇게 생각이 되니까.
  파리는 참으로 넓고, 시원시원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연히, 실로 우연히 화가 권옥연(權玉淵) 씨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지, 개구리가 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음식점에 들러서 화가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파리에 와 있는 교포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옥(李玉) 교수를 만났습니다. 이옥 교수는 파리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옥 선생의 아버님은 이민(李民) 법무장관이었습니다. 주요섭 선생과 친하셨다고 했습니다. 대학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밤마다 주요섭 선생을 방에 혼자 계시게 하고, 혼자 파리 시내를 쏘다녔습니다. 겁도 모르고.
  수없이 개선문 거리를, 센 강변을, 파리 소르본 대학 거리를, 몽파르나스 거리를, 파리의 밤 냄새에 취하기 위해서 실로 힘도 좋게 걸어 다녔습니다. 이렇게 한 일주일을 묵고 뮌헨을 거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갔습니다. 뮌헨에서 전혜린(田惠麟) 여사로부터 김치를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는 엽서를 받았지만 여행 예정 때문에 들르지 못하고 그대로 비엔나로 갔던 겁니다, 전혜린 여사는 당시 남편과 뮌헨 대학에 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비엔나에서 제네바로, 제네바에서 이태리 로마로, 로마에서 이집트 카이로로, 카이로에서 파키스탄 카라치로, 카라치에서 태국 방콕으로, 방콕에서 필리핀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홍콩으로, 홍콩에서 다시 자유중국 타이베이로, 타이베이에서 오키나와, 오사카 그리고 서울로 귀국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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