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71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8 13:12
조회수: 148
 
32 스카이 라운지 (반도호텔 옥상 스카이 라운지에서)

        반도호텔 옥상 글래스 룸은
        서울의 스카이 라운지

        노을이 번지는 유리창 안에서
        이국종 사보텐처럼 술을 마신다

        하강하는 항공기처럼
        가벼운 날개를 밤이 내리면

        서울은 창 밖에 북극
        쓸쓸한 古都
        부부의 화해처럼 깊어만 간다

        영원한 정지 속에
        호흡처럼 가는 생존

        서울 옥상에서 술 마시는 이방의 베가본드는
        친절과 교만의 미소를 놓고 간다

        별이여
        영원한 性의 슬픔이여
        어쩔 수 없이 옷을 벗는 나의 여인이여
        조국이라는 이름의 땅이여

        고독은 자유항
        밤이라는 언덕이여

        반도호텔 옥상 글래스 룸은
        서울의 스카이 라운지

        밤과 별과 마음이 번지는 유리창 안에서
        이국종 사보텐처럼 술을 마신다.

                                        시집 『서울』에서

        주: 사보텐은 선인장을 말함

-----------------------------------------------------------------------------

  내가 대수를 강의하러 들어간 교실에 이강석(李康石) 군이 있었습니다. 이강석 군은 대단히 말쑥하게, 깨끗하게, 총명하게 생긴 귀여운 소년이었습니다. 강석군의 동생 강욱(康旭) 군도 서울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강석 군이 “선생님, 이 쿠폰을 가지고, 반도호텔 스카이 라운지에서 좋은 술 드세요” 하고 여러 장이 한 권이 되어 있는 쿠폰을 주었습니다. 이강석 군은 잘 알려진 대로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기붕 씨의 진짜 아들입니다.
  나는 서울고등학교에서 별명이 ‘술통’이었습니다. 부산 피난시절 ‘통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지나가던 학생 눈에 띄어서 글씨를 좌로 읽을 것을 우로 읽어서 ‘통술’이 ‘술통’이 된 겁니다. 또한 술도 참으로 많이 마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별명이 ‘술통’이 된 겁니다. ‘술통’이라는 별명은 삽시간에 온 학생들에게 퍼져서 서슴지 않고 운동장이나, 낭하나, 교실에서나, 나의 이름이 되어 버린 겁니다. 나는 이 별명 때문에 오히려 인간적인 실로 인간적인 그 인간을 살아 갈 수가 있었습니다. 교원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위선적인 인간을 살지 않고
  나는 이강석 군이 늘 보급해 주는 쿠폰을 가지고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스카이 라운지로 저녁마다 좋은 양주를 마시러 갔던 겁니다.
  반도호텔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입니다. 그 때만 해도 이 반도호텔이 가장 큰 호텔이었습니다.
  스카이 라운지는 이 호텔 옥상에 있었습니다. 과연 외국인들이 출입하는 고급 라운지였습니다. 없는 술 없이 좋은 고급 양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한 잔 두 잔 하곤, 명동으로 가곤 했습니다. 혼자 마시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좋은 친구들에게 대접도 하면서.
  이렇게 나는 이강석 군 때문에 좋은 양주를, 조망이 좋은 그 옥상 라운지에서 넓은 유리창에 둘러싸여 무슨 고급한 여행자처럼 마시곤 했던 겁니다. 이 시처럼 시정에 잠겨서.
    
△ 이전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72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 다음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70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en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