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47호, 주점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2-05-23 10:06
조회수: 2845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 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 할
아무런 죄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화단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력서를 쓰기 싫은
그 날이 있어부터
이 거리를 나는 잊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그러한 수속조차 이미 나에겐 권태스러워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눈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산다는 것이 권태스러운 일이 아니라
수속을 해야 할 내가 있어
그 많은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글 한 자 꼼짝하기 싫어
눈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아버지가 된 그 일이
마침내 어쩔 수 없는 내 여생과 같이


시집 『패각(貝殼)의 침실(寢室)』에서.



      
  부산 방면으로 도망들을 간 사람들이 한때(1950. 9. 28) 서울로 다시 수복을 했습니다. 국군들이 유엔군의 힘을 얻어 연합전선을 펴 북으로, 북으로, 38선을 넘어 멀리 압록강까지, 두만강까지 진격을 했던 겁니다. 인천에 상륙을 해서.
  그런데 수복지구에선 도망을 간 사람들을 도강파라 하고, 도망을 못 간 사람들을 비도강파라고 하면서 서로 감정들이 좋지 못했습니다.
...

  이러한 살기등등한 분위기 속에서, 인천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촌문인들에게 나는 비도강파로 몰려 한때 고생을 했습니다. 소설 『25시』처럼.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 종군문인증을 발급 받아 평양으로 종군을 했습니다. 평양까지는 군인 트럭을 타고 갔었습니다. 허허 폐허가 된 평양에서 한 두 주일쯤 지났을 무렵 국군과 유엔 연합군이 후퇴를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나는 그 길로 경성사범학교 동기동창이었던 선우휘(소설가, 당시 정훈대위, 평양분실장)가 마련해 준 군용트럭을 타고 쏜살같이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던 도중, 어마어마한 유엔군의 대규모 후퇴작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그 야간 풍경을.
  서울로 오자마자 이번엔 소위 비도강파라는 더러운 이름을 벗기 위하여 곧장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로부터 어려운 부산 피난살이. 이러한 「주점」과 같은 시가 나에게서도 나올 정도로 부산은 무질서, 부조리, 혼란, 무법천지, 생존을 위한 먼지 같은 도시였습니다.
  이러니까, 소위 사회 참여라는 시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제3시집 『패각(貝殼)의 침실(寢室)』로 1952년 4월, 정음사에서 나왔습니다.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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