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91호 외로운 여행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3-03-25 18:14
조회수: 2801
 
외로운 여행 길

                        황 금 찬


조병화 시인이
고향을 떠난 지 10년이다.
내가 조병화 시인을
자주 만나게 된 것은
대략 1954년경이다.

혜화동에 있는
동성 고등학교에
교사가 되면서부터였다.

조병화 시인은
혜화동에서
생활했다.
그러니 혜화동 시인이다.

그때를 전후하여
혜화동의 자리한
시인들의
이름을 기록해본다.

혜화동의 시인들

조병화, 조지훈, 박목월,
김종문, 정한모, 김구용,
장 호, 송 욱, 성춘복,
이생진, 윤강로, 박희진
이런 시인들이
혜화동을 지켜왔다.

그때 혜화동 시인들이
자주 들리곤 했던
다방이 있었다.

바로 ‘보헤미안’이다.

그때 여류시인들도
자주 들리곤 했는데
허영자 시인과
홍금자 시인이 있었다.

그 어느 해였던가
조병화 시인이 움직이던
세계 시인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게 되었다.
많은 시인들이 참석해주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
시인대회는
많은 나라로 번져 나갔다.

일본 및 태국뿐만 아니라
인도로 까지 문을 열었다.
한국 시인들은 세계 시인대회에서
거의 빠지는 일이 없었다.

86년의 시인대회는
그리스 이오니아 해의 섬에서 열렸다.
그 대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에서 시 낭독을 하게 되었다.
한국 시인 몇 명과 프랑스 시인 몇 명이
시 낭송을 한 것이다.
이 모임에 프랑스 펜클럽 회장이
참석해 주었다.
한국 시인들은 우리말로 낭송하고
영어로 번역된 시는 또 다른 시인이
낭송하기로 했다.
장소는 한국 문화원이었다.
펜클럽 회장이 조병화 시인을 찾아왔다.
그가 하는 말이
한국 현대시는 지금의 현대 시를 능가합니다.
헌데 그런 시를 우리들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번역이 되지 않아서 입니다.
가능하면 한국에서 불어 번역을 좀 해주십시오.

조병화 시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경제력이 약해져서 힘들 것 같습니다.”
회장이 웃으면서
그러면 한국 시를 그대로 보내주세요,
우리가 불어로 번역해서 읽으렵니다.
한국 시는 최고의 현대시입니다.

조병화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란다.
그 말이 사실이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나 시인들은 저 하늘 나라에 시인들만 모이는 곳이 또 따로 있답니다.
우리들은 그곳에서 다시 만날 것을 다시 약속합니다.
시인들의 세계는 아름다운 세계일 것입니다.
조병화 시인이여 안녕히-



황금찬(시인)

출생  1918년 8월 10일 (강원도 속초)
수상  1996년 대한민국 문학부문 문화예술상
        1992년 문화의 달 보관문화훈장
        1990년 서울시 문화상
경력  해변시인학교 교장
        1951 시동인 청포도 결성
       1946~1978 강릉농업고등학교, 동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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