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75호 어느 하이웨이에서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2-11-22 17:04
조회수: 2771
 
어느 하이웨이에서
  
               조병화

아무리 소리친들
멍멍
고국은 멀다

마냥 70마일 시속
엔진에 떠서
보이지 않는 길머리
길머릴 넘어도
닿지 않는
방향

창밖에 이동하는 정경은
분명 세상이지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이지
살다 가는 세상이지
이것이 바로
하며, 주위를 돌아다 보면, 마냥 그 자리
둘둘
나는 홀로다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
주명(州名)은 달라도 어쩌면 이렇게도 먼 나라
밤, 낮이
노상에서 식사를 한다
인간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
서로 떨어진 자리
서로 가까이 다가가다 목숨 떨어지면
그뿐
그것을 산다

생각하면 사는 자 죽는 자의 풀밭
지구를 다 돌았구나
어렸을 때 아득하던 곳 다 돌았구나
자라서 버릴 것 버리고
철들은 지금 이 자리
이 노상
노상에서 나머지를 산다

1966년 6월 하이웨이
미시시피
강 건너 보이는
불빛

멍멍
떠난 자리는 멀다

--시집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에서


      이 무렵 나는 미국 뉴욕에서 열렸던 국제 P.E.N. 연차대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 여행사에 ‘99$99일’이라는 여행 쿠폰을 팔고 있었습니다. 99$를 내면 99일간 버스로 미국 전 지역을 여행할 수가 있다는 표입니다. 나는 이 표를 사서 미국 전 지역을 버스로 지상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되도록 보다 많은 인생을 살기 위하여 몸을 가지고 이 눈에 보이는 자연의 세계를 보다 많이 여행을 한다는 소년 시절의 꿈과, 책을 통해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영혼의 세계)를 보다 많이 여행을 한다는 역시 소년 시절의 꿈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 쿠폰을 사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비행기로 날고, 그곳부터 줄곧 버스를 타고 우선 대회장이 있는 뉴욕까지 가고, 대회가 끝나곤 줄곧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동으로, 북으로, 남으로, 서부로, 약 60일간을 그림을 그리면서 고생은 했지만 즐거운 지상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집엔 미국을 장소마다 그린 그림이 시와 더불어 들어 있습니다.
     이 시는 이 시에 나오는 장소를 지나가면서 평소에 품고 있었던 나의 인생철학 ‘인간은 떨어져 있는 외로운 단독자(憺者)’ 라는 생각을 풀어 넣었던 겁니다. 동시에 소년 시절에 품었던 꿈, ‘보다 많이 인생을 살자, 몸으로 자연 세계를, 책으로 정신세계를’ 하는 꿈을 전개시켰던 겁니다.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15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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