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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52호, 찬란한 꽃다발은 없이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2-06-12 09:56
조회수: 3201
 
찬란한 꽃다발은 없이
               - 全鳳來(전봉래) 시인의 회상

조병화

선회하는 세월 속에
난숙한 어린 황혼처럼 너는 가고
마침내
그것이 또 하나의 변명처럼
나에겐
아무 소용도 없는 시가 늘어 간다.

항시
너는 짝 잃은 비둘기처럼 맑다.

그 많은 외로움이
너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두둘기면
너는 호올로
연지와 같은 시를 토한다.

외로움은
아름다운 너의 눈에서부터 왔다.

눈에 어리는 샹들리에 그늘에서
언제나 사람들이 그리워 날을 샌다.

억센 세월 속에
그것이 오히려 너에게 남은
단 하나의 명백한 반항인 듯이 가고

마침내 그것이 또 하나의 변명처럼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시가 늘어 간다.

시집 『貝殼의 寢室』에서

휴전이 될 무렵, 광복동 거리와 나란히 줄지어 있는 남포동 거리, 중심가 ‘스타’다방에서 전봉래(全鳳來) 시인이 음독 자살을 했습니다.
‘스타’다방은 건물 지하에 있었습니다. 음산한 다방이었습니다. 짧은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는 페노비탈을 마셨다. 일 분이 지났다. 아무렇지도 않다. 이 분이 지났다. 아무렇지도 않다. 바하의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오 분이 지났다. 몽롱해진다∙∙∙∙∙∙, 나는 명백하게 살고 싶었다.>
완전히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지만, 대충 이러한 스타일의 문장이며, 그 내용이었습니다. ‘명백’하게 살고 싶었다는 그 ‘명백’이라는 단어는 확실합니다. 무엇을 명백하게 살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이 말이 이 유서의 핵심같이 느껴졌습니다.
아침이었습니다. 나는 바로 그 전날 관복동에서 전봉래 시인을 만났었고 그가 “자네 돈 있나?” 해서 있는 돈을 절반 전봉래 시인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 자살 소식은 나에게 큰 쇼크였습니다.
전봉래 시인은 전봉건 시인의 친형이며, 첼리스트 전봉초 씨의 사촌이라고 나는 듣고 있었습니다.

...

과묵한 시인이었습니다. 언제나 복장이 단정한 신사였습니다. 접근하기가 어려운, 까다로운 그리고 날카로운 시인이었습니다.
6∙25 동란 중 평양으로 유엔군이 진격했을 땐 평양에 있었습니다. 그 땐 말숙한 군복에다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반전주의자로 보이던 그가 그러한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습니다.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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