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34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6 18:44
조회수: 87
 
미루나무

  무더운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넓은 대학 캠퍼스는 여름방학으로 고요하기 짝이 없다. 서울의 공해 속에서도 매미 우는 소리가 계절처럼 들려오고 있다. 그리고 미루나무가 도서관 시계탑 옆에서 바람에 낄낄 너울거리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 미루나무를 좋아했다. 나무로선 가장 하등의 나무, 재목으로도 쓸모가 없는 그저 헐렁헐렁한 나무라 하지만 나는 이 나무만 보면 고향에 살고 있는 기쁨을 느끼곤 한다.
  그저 순진하기만 하고, 그저 웃기만 하고, 그저 쑥쑥 자라기만 하는 이 죄 없는 나무의 모습이 우리 고향처럼 다정하기만 하다.
  독기가 없고, 줏대를 세우지 않고, 뭐 뭐 체하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악의가 없는 그 스타일이 좋다. 사랑을 받으려하지 않고, 그걸 독점하려하지 않고, 특별하게 양육을 바라지 않는 그 성품, 그저 아무 곳에나 아무렇게나 꽂아 놓아도 살고, 성장하고, 항상 만족하고 있는 그 성품. 서글플 만큼 사랑스러운 나무다. 혼자 만족하고 있는 대로 둘이 있으면 둘이 있는 대로 여럿이 있으면 여럿이 있는 대로 그저 그 자연대로 멋이 있는 나무, 그게 내가 보는 미루나무다.
  옛날 도오꾜로 공부를 하러 다녔을 때, 차창 밖으로 이동하는 풍경 속에서 나는 이 미루나무를 만나면 즐거웠다. 그러나 시모노세끼로부터 히로시마, 오오사까, 교오또, 나고야, 도오꾜에 이르기까지 일본 열도에서 이 미루나무를 본 일이 없다.
  도오꾜를 둘러싼 관동지방 시골엘 나가 바도 이 그림자 같은 미루나무를 볼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선 우리나라의 상징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흔한 미루나무가, 참으로 일본에선 드물게 보이는 이 미루나무, 홋까이도(北海道)엔 많다고 하지만.
  펜클럽 서독 대회에 참석하여 마인강, 라인강, 네카강 등 강변 지방을 여행했을 때, 우리나라처럼 끝없이 성장하고 있는 이 키 높은 미루나무를 나는 본 일이 있다. 또한 런던에서, 덴마크에서 스웨덴에서, 로마에서 이렇게 미루나무는 온대지방에서도 약간 북에 가까운 풍토에서 자라는 모양이다.
  나는 이 미루나무가 주는 서정을 언제나 어린 시절처럼 잊을 수가 없다. 목질이 약해서 쓸 수가 없는 나무라 하지만, 이 미루나무가 주는 낭만을 깊이깊이 새기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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