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27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6 18:37
조회수: 77
 
공산권 여행 • 1
   - 시와 그림으로 본

벌써 작년이 된다. 세월 참으로 빨리 도망도 간다. 세월이 캄캄한 어제로 도망칠수록 인간은 그만큼 늙어간다.
  작년 11월, 뜻밖에 공산권의 하나인 중국을 여행하게 되었다. 10월에 제11회 세계세인대회가 타일랜드의 수도 방콕에서 있었고, 방콕 세계시인대회는 15명의 한국대표를 인솔했었다. 금년엔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11월에 열린다. 이 대회에도 많은 대표들이 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공이, 얼마나 가기 힘든 나라였던가, 그만큼 긴장감도 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자유국가를 여행하는 것만큼 수월하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커졌다는 것을 뜻하는 거다. 사실 우리나라도 엄청나게 커졌다. 미화 5,000불까지 자유스럽게 가지고나갈 수 있게끔 되었으니.
  내가 1957년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3년 전에 처음으로 일본 동경에서 열렸던 P. E. N. 대회에 참석했을 땐 500불밖엔 공식적으로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자연 소위 야미 달라를 안 가지고 나라 수가 없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이렇게 그 10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미화를 가지고 나갈 수가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우리나라가 강대하게 되었는가. 그렇다고 해서 돈을 흥청망청 써서는 안 되겠지만 하여간 그만큼 여행이 자유스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행자유는 국력을 단단히 펴가는 데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남의 나라를 많이 볼수록 우리나라도 커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행 자유화를 부정적만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긍정적으로, 더 나가서는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시대는 갔다. 넓은 개울도 보고, 강도 보고, 바다도 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이런 뜻에서 더욱 많은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요 몇 년전만 해도 정부가 얼마나 옹졸하고 폐쇄적이었던가.
  그런데 요즘은 공산권의 나라들도 여행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배우는 것이 많아지고,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각도도 달라졌다.
  지금 중공여행을 할려면 우선 홍콩에서 여행 비자를 얻어야 한다. 홍콩에 있는 중국여행사가 그 영사업무를 대행해 주고 있다. 그것도 왜만한 이유라면 다 가능하다.
  홍콩에서 중공기를 탄다. 그리곤 자기가 원하는 고장으로 날으면 된다.
  우리 일행은 우선 그곳에서 가장 가깝고, 자연이 그렇게 묘한 계림(桂林)이라는 곳으로 우선 갔다. 일단 중공 땅에 들어서면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짐은 절대 안심, 중공 관리가 다 숙소까지 운반해 준다. 공산국가인만큼 치안은 이렇게 절대 안심이었다.
  맨 처음엔 무섭기 짝이 없었다. 무표정하고, 불친절하고, 사무적이고, 웃음이 없다. 몸수색도 대단하고, 그러나 아무런 하자가 없으면 누구나 공항을 통과하게 마련이다.
  첫발 디딘 중공 땅, 참으로 감회가 무공했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철의 장막 아니면 죽의 장막이 아니었던가. 그 첫발을 디딘 중공 땅은 내가 어려서 시골에서 보던 그 대자연 그대로였다.
오염되지 않은 그 흙냄새, 인분냄새, 수풀냄새, 그대로 나는 대자연이었다.
  나는 그 맑은 공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거리는 우리나라 해방 직후의 모양 그대로 미개지였다. 그리고 어딜가나 달라 바꿔달라는 청년들이 우굴 거렸다. 그리고 담배 달라, 볼펜 달라, 껌 달라, 달라는 것이 그렇게 많은 빈곤한 사람들뿐이었다.
  이곳 계림(桂林)에선 뱃노래가 제일이다, 배를 타고 강을 꾸불꾸불 100리를 내려간 그 강 위에서의 경관이 기암절벽 이루 말할 수 없는 절경이다. 옛날엔 이곳이 바다 밑이었다고 한다. 생전에 보지 못했던 산수의 경치, 나는 그것에 압도당했다.

     기암절벽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강로백리(江路百里)길을 흘러 내려 갔었다

     강변의 촌락들이 서정시 같았다.

  이런 시를 메모하면서 다른 것은 더 말할 수가 없었다.
  다음엔 중공 국내기로 중국 고도 서안(西安)으로 갔다. 서안은 진황으로 유명한 곳, 양귀비(楊貴妃)의 별장 화청지(華淸池)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줄 썼다.

     국가는 망하더라도 사랑만 있으면.

  그리고 이곳엔 지금 대중목욕탕이 있어 사람들이 줄을 지고 있었다. 과연 훌륭한 건물이었다. 참으로 먼지 많은 큰 도시, 살벌한 시내 풍경들이었다. 어딜 보나 자전거 물결이었다. 청색옷의.
  다음은 북경(北京)으로 역시 국내기를 이용해서 날아갔다. 국내기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기내음식이며, 더럽기 짝이 없고, 어딜 가나 불결했다. 이런 걸 타고 어떻게 여행을 즐기나할 정도로. 그러나 이것이 이 나라의 가장 월등한 교통수단이라 했다.
  북경 비행장 역시 쓸쓸하고 살풍경했다. 다만 비행장에서 시내로 가는 길의 가로수가 인상적이었다. 참으로 넓은 길 대륙다운 대로였다. 북경시내 풍경도 사람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적막한 폐쇄 거리였다. 상점이 그렇고, 거리가 다 죽어 있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천안문(天安門) 광장 천안문(天安門) 광장 !’ 하지만 문짝이 다 떨어져 나간 더러운 중공 화장실들이었다.
  광대한 옛 궁궐, 옛 왕릉, 옛 연못, 옛날의 대국답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때마침 불어 닥치는 삭풍에
     온 몸은 중천에 뜨고

     어디선지 성벽 밑에서 들려오는
     맹강녀(孟姜女)의 울음소리

    여보, 여보,

    장성은 굽이굽이 영을 넘고

  맹강녀는 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축성할 때 끌려 나갔다가 죽은 농부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그게 그것 불결하고 나로서는 실망이 컸었다. 물건도 조잡하고.
  실로 살 것이 없는 곳이 중공이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왜 그리 약을 많이 사는지 오히려 그 광경이 볼만했다.
  이곳에서 항주(抗州)로 날아갔다. 항주는 서호(西湖)로 유명한 곳, 그러나 그것이 역시 내 눈엔 그것이었다.
  항주서부터는 기차로 상해(上海), 소주(蘇州), 남경(南京)을 두루 여행을 했는데 우리가 탄 특등열차도 역시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국내 비행기는 하늘을 떠야 가는 가보다 했는데 기차는 비교적 제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하고 했다. 그러나 여객이나 짐짝이나 같읁 혼잡하고 소란하고 더럽기 짝이 없었다. 이러한 것 역시 미개한 동양적 풍경이라 생각했다.
  상해(上海)에서 노신공원(魯迅公園)을 구경했다. 중국의 유명한 개혁자였으며 계몽가였으며, 소설가였던 그는 죽어서 이 공원에 훌륭한 조각으로 그 무덤을 장식하고 누워 있었다. 공원엔 웬 그리 사람이 많은지 놀랬다.
  중공에선 ‘마우타이’라는 술이 유명하다기에 일행에게 한 병씩을 어느 날 저녁 한 턱을 냈다. 그런데 그것이 한 병에 100불씩이었다. 나는 놀랬다. 그러나 그 맛은 역시 중국 내력처럼 감칠맛이 있었다. 중공엔 두 가지 화폐가 있다. 그런데 그 가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이것도 이 나라의 큰 모순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남경에서 양자강(楊子江) 다리를 모았을 땐 그 인간의 힘에 놀랬다. 만리장성을 쌓을 때  만큼의 인력이 동원되었으리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다리였다.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이곳에선 양자강(楊子江)을 장강이라고 한다
    장강에 걸친 다리는
    과연 인간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사풍 속에서.

  이렇게 한 열흘을 주마간산 격으로 돌다가 남경에서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나왔다.
  그 깨끗한 국제선, 어쩌면 그렇게 국내기와 다를까, 같은 중국 민항기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홍콩공항 의자에 앉아 있노라니, 벌을 받고 나온 사람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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