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21호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6 18:18
조회수: 87
 
열쇠

1959년 7월에 제29차 국제 P.E.N.클럽 세계 대회가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다. 국제P.E.N. 클럽은 국제적으로 조직이 된 시인(P)•극작가(P)•문학편집인(E)•수필가(E) 그리고 소설가(N)의 연합단체이며 1921년 런던에서 창립이 되고 우리나라는 1954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회 때 처음으로 가입, 승인이 되었다. 그리고 1970년 6월 동양에선 두 번째로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서 제37차 대회가 열렸었다. 이 회의는 매년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돌아가며 여는데 금년 회의는 이스라엘에서 이달 16일부터 열린다. 내년은 일본 교오또(京都)에서 열린다고 한다.
  민족•인종•국가•종교를 초월한 비정치적인 문인 단체이며 투옥작가(投獄作家)를 비롯해 문인들의 권익옹호를 그 큰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그 기본골격으로 가지고 있다.
  요컨대 창작의 자유가 그 근본 성격으로 되어 있다. 펜팔의 펜(PEN) 하곤 전연 다른 것인데 지식인 간에도 P.E.N. 클럽과 펜팔의 PEN을 혼돈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간단한 설명을 붙인 것이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시성 괴테의 고향. 나는 이 프랑크푸르트 대회에 한국 대표단의 일행으로 참석하였다.
  홍콩•방콕•카라치•베이루트•이스탄불•프랑크푸르트 이러한 코스로 여행을 시작했는데 그 첫 기항지 홍콩에선 그랜드 호텔이라는 중류 호텔에 묵었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의 습관처럼 외출을 할 땐 키를 가지고 나갔었다.
  그런데 이걸 본 호텔 보이가 “손님, 그 키를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손님방의 룸서비스입니다. 손님이 문을 잠그고 나가시더라도 제가 다시 손님방을 열고 청소를 해야 하니까요. 문을 안 잠그고 나가셔도 괜찮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의심 많고 촌스러웠던 내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나는 의심이 많았고 촌스러웠던 거다. 의심이 많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타인에게도 그렇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인간이 되었을까 ?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는 환경이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던 거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법이다. 환경을 지배하며 그걸 개조해 나가는 강한 인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저항과 순응 아니면 동화로 그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는 거다. 호텔 보이의 말대로 나는 ‘남을 믿지 못하는 환경’ 속에 살아왔던 거다. 보잘 것 없는 키를 의지해야만 안심이 되는 불행한 생활을 해왔던 거다. 그 불안과 공포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면서 고독하게 살아왔던 거다.
  오늘날의 자기불신, 상호불신 이 거대한 불행은 바로 그것의 연속이 아닌가.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러한 불신의 연속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
  다른 나라의 일은 제쳐 놓고서라도 우리나라의 오늘날의 불행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불신 풍조 속에 가득히 괴어 있는 게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고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를 망가뜨리며 살고들 있는 게 아닌가. 자기 방어를 하면서 마음속 깊이 불신의 키를 소지하면서 그 불행을 고독으로 느끼면서, 어쩔 수 없는 그 혼자를 살고 있겠지만 이것은 정신적인 가치 세계가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권력과 금력, 그 물질과 조직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돈이 모든 걸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통틀어서 인간의 꿈이 그 바람에 망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이러한 불행한 생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저항으로 그 분신의 키의 생활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
  남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망가져 가는 자기 인격의 파괴를 두려워하면서 홍콩 그랜드 호텔 보이 생각이 날 때가 가끔 있다. 불신처럼 불행한 인생이 어디 있으랴. 선량한 키로 우리 서로 그 불신을 열어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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