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528호 옛 시인의 묘비 앞에서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8-03-05 18:06
조회수: 576
 
  지나간 10월 3일~4일. 경상북도 영양(英陽)에 다녀왔습니다. 영양문화원 주최 청소년 백일장이 있어서 특별 강연을 부탁받고 갔던 작은 가을 여행이었습니다.
  강연 청탁을 받고선, 그곳까지 어떻게 가나? 근심을 하고 있는 판에 을지문화사 윤해규 사장 가족 일행이 동행한다며 비행기로 안내한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비행기로 경북 예천까지(약 사십 분), 그곳에서 승용차로 약 두 시간 반, 그러니까 영양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 청소년 백일장, 청소년 강연을 겸해서 내가 선뜻 영양행을 승낙했던 것은 조지훈 시인의 고양, 오일도의 고향, 그것을 보고 싶었던 마음에서 승낙을 했던 겁니다.
  영양은 참으로 먼 먼 산골, 오지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먼저 조지훈 시인의 고향으로 가서 그 고향 어귀에 있는 울창한 숲속에 안좌하고 있는 그의 시비를 보았습니다. 보았다기보다는 술 한 잔 올리고, 꽃 한 다발 놓고, 옛날을 회상하면서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나에겐 참으로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한참 한국 문단이 파벌로 분파되어 갈 때, 조지훈 시인은 양심적으로 좋은 시인쪽에 서서 정의로운 행동을 취했던 시인이었습니다. 정직한 시인이었지요. 의리가 있었던 시인이었지요. 시인도 시인이려니와 의로운 호걸이었지요. 한참 현대 문학, 문인 협회 사람들이 극성을 부릴 때 그는 정직한 편에 서서 그 파벌주의를 타파했었지요. 그도 청록파라는 시인의 한 사람이었지만.
  영양을 빠져 나오는 길목에서 오일도 시인의 묘비를 참배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일도 시인은 작품을 많이 쓰지는 못했습니다. 영양문화원장 시절 이창환 시인이 세웠다고 했습니다. 때마침 외국 여행 중이어서 그의 이름이 빠진 것을 서운하게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의 고향은 이웃골, 청송이어서 청송을 지나갈 땐 영양 일만 해서, 고향에 미안해 오줌도 못 누었다는 양심적인 시인이었습니다.
  그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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