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503호 이 동산은 네가 살 곳이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7-09-12 13:59
조회수: 335
 
  이젠 화창한 봄날입니다. 아직은 좀 쌀쌀한 황사 바람이 불어오지만.
  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결같이 밝은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실 줄 압니다.
  나는 한식날 식목을 하고,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번에는 장미를 편운회관 앞뜰에 많이 심었습니다. 죽은 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들을 심었습니다.
  이번에는 스탠포드에 다니는 손자도 봄 방학이라 해서 나와서 같이 식목을 해서 더욱 뜻이 있고 기뻤습니다.
  “이 동산은 장차 네가 살 곳이니, 그 때쯤은 이 밤나무도 열매가 열리고, 이 장미꽃도 만발하리” 하면서 죽지 않게 심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계를 하는 것이지요. 이 세상을 모두 손자에게 인계를 하는 것이지요. 나도 나이가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손자를 데리고 고조 · 증조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산소를 차례 차례, 이 묘는 한양 조씨 20대 할아버지의 묘, 이 묘는 21대 할아버지의 묘, 이 묘는 22대 할아버지의 묘 이 묘는 23대 할아버지의 묘, 이렇게 일일이 설명을 하면서, 앞산 뒷산의 산소에 차례를 올렸습니다.
  나는 한양 조씨 24대이니까, 너는 한양 조씨 26대라고, 족보를 설명해 가면서.
  나는 할머님 묘소 옆으로 죽어서 가니, 그리 알라고.
  화창한 봄날, 노고지리가 울고, 산새가 울고, 마냥 고향의 자연은 평화스럽기만 했습니다.
  이러한 한식 차림도 이제, 우리 시대로 끝이 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제화 · 세계화 물결에 살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어찌 이 구닥다리 동양의 풍습, 그 전통을 이어 가겠습니까. 서운한 일이지만, 이 무거운 전통이 이어져 갈 것 같지 않습니다. 가장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는 하지막.
  핵가족이 되어 가는 현실에서. 그럼 또. (199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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