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502호 고로쇠나무의 비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7-09-12 13:58
조회수: 372
 
  일전에, 안성문화원에서 개최하는 안성 청소년 문화 강좌에 강연차 갔다 왔습니다.
  원장으로 계시는 최병찬(崔炳贊) 님은 동국대학교를 나오신 한학과 불교에 대하여 아주 조예(造詣)가 깊으신 분이고, 인격적으로 내가 평소에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장의 초청에 응했던 겁니다. 또한 원장님은 서예에도 깊은 경지에 이르시어 현대에는 드물게 보는 이조 선비 같은 품격을 지니신 분이옵니다.
  실로 이런 분이 시골에 파묻혀 있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훌륭한 분이시옵니다.
  하기야 이러한 훌륭한 분이 고향을 지키고 계셔야 지방 문화가 발전하여 나라가 든든히 커가겠지만.
  점심 식사를 마둔(馬屯) 저수지 언덕 위에 신장 개업을 한 아름다운 밥집에서 했습니다만, 이 집에서도 고로쇠 물을 내놓았습니다. 이 산골에서도 고로쇠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했습니다. 고로쇠나무는 전라도 지리산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요즘 고로쇠 물이 유행이라, 그것에 대하여 나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시로 표현을 해보았습니다.
  
  
  고로쇠
  
  긴 겨울에서 봄이 풀리자
  이 나라 백성들은 고로쇠 물을
  빨아 마시기에 북새들입니다.
  
  남원으로, 구례로, 전주로, 광주로,
  지리산 산골짝으로,
  객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고로쇠 물로
  있는 배 다 채워 가면서
  
  건강을 이야기하며
  정력을 이야기하며
  장수 무병을 이야기하며
  생명을 잃어 가는 지구를 근심하며
  자연 보호를 이야기하며
  푸른 나라 가꾸기를 이야기합니다.
  
  고로쇠 물은 고로쇠가 살아 남기 위하여
  부단히 깊은 지하에서 뽑아 올리는 것을,
  
  아, 석가세존이시여
  세상은 이쯤 되어버렸습니다.
  나무의 물까지 빨아 마신다니
  고로쇠의 피까지 말려버린다니,
  
  실로 험악한 세상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원장 안내로 성남사를 구경했습니다. 강연은 안성여자고등학교에서.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그럼 또. (199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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