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56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46
조회수: 65
 
18 너와 나는

        이별하기에
        슬픈 시절은 이미 늦었다

        모두가 어제와 같이 배열되는
        시간 속에
        나에게도 내일과 같은
        그날이 있을 것만 같이
        그날의 기도를 위하여
        내 모든 사랑의 예절을 정리하여야 한다.

        떼어버린 캘린더 속에
        모닝커피처럼
        사랑은 가벼운 생리가 된다

        너와 나의 회화엔
        사랑의 문답이 없다

        또 하나 행복한 날의 기억을 위하여서만
        눈물의 인사를 빌리기로 하자

        하루와 같이 지나가는 사랑들이었다
        그와도 같이 보내야 할 인생들이었다

        모두가 어제와 같이 배열되는 시간 속에
        나에게도 내일과 같은
        그날이 있을 것만 같이

        이별하기에 슬픈 시절이 돌아간
        샹들리에 그늘에 서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작별을 해야 한다

        너와 나는.
                                                                                                                         시집 『貝殼의 寢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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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감한 대로, 드디어 1950년 6월 25일 아침 북한 인민군은 38선을 넘어 서울로 침입해 왔습니다.
  항상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줄을 알고 지냈지만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서울고등학교에서 역시 물리 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근심이 되었던 것은 제2시집으로 낸 『하루만의 위안』(1950.4.13.)이 어떻게
배부가 될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제2시집이 나와서 두 달이 좀 넘은 시일이 아니었던가, 서점으로 배부된 이 시집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불안이 먼저 앞섰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하면서 이젠 이별하기에도 바쁜 시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머리에 떠오른 시상이 이「너와 나는」이라는 시로 응결되었습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던 겁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은 무슨 도망을
갈 아무런 죄도, 행동도 없었기 때문에 남쪽으로 피난을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당시 나는 인천에 집이 있어서, 우선 집안 식구들을 소개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가족들을 인천에서 가까운 주안 농가에 피신,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인민군들을 피해 인천에 있는 집에 왔다갔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워낙에 검문이 심해서 그 눈을 피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걸 해야만 했었습니다. 참으로 사는 것이 우울하고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죽는 것만 생각하고 연구를 했었습니다. 실로 소화도 잘 되지 않는 하루하루를 숨어서 살아야만 했었습니다. 막연한 내일을 두고, 만날만한 벗도 사람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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