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53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42
조회수: 65
 
15. 무수한 태양
    알버트 슈바이처에게

        진한 회색 종이 위에
        빨간 크레용을 마구 문대긴 상철이의 그림처럼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긴장한 구도 속에서

        슈바이처!

        목마른 아해처럼 그대 이름을 불렀다

        능금을 먹은 어버이들의 죄를 가슴에 안고
        접근할 수 없는 거리 밖에
        타고난 외곽지대를 순례하며
        사람이 우거진 사람들 속에서
        사람에 외로운 사람처럼

        슈바이처!

        사람 곁을 지나왔다

        수만의 태양이 기억된다

        능금을 먹은 어버이들의 죄를 가져
        오히려 빛나게 뵈는 태양 아래
        죄 아닌 죄를 가진 사람들끼리 다정히 산다

        진한 회색 종이 위에
        빨간 크레용을 마구 문대긴 상철이의 그림처럼
        붉은 태양이 솟아오는 긴장한
        구도 속에서

        슈바이처!

        무수한 그대 얼굴을 보았다.

                                                 시집 『하루만의 慰安』에서
-----------------------------------------------------------------------------
  매일 매일이 불안했습니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는 불안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야
했습니다. 언제 이북이 쳐 내려올 줄도 모르는 그 정치적 아우성 속에서 선량한 우리 백성들은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불안한 역사 속에서 나는 학생시절 읽었던 알버트 슈바이처 생각이 나곤
했습니다. 사실 나는 알버트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나의 사상』을 읽고, 크게 감동이
되어 장차 그 사람처럼 되길 꿈꾸며 살아왔던 겁니다. 그런데 그 꿈은 이루어지다 말고, 산산이 부서지고, 해방은 나에게 절망⸱좌절⸱죽음⸱부활, 이러한 수난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겁니다.
  앞날이 실로 막연한 현실에서 붉은 태양처럼 멀리 알버트 슈바이처는 도달할 수 없는
거리 밖에서 비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집 『하루만의 위안(慰安)』(1950. 4)을 알버트 슈바이처에게 바치는 헌시를
달아서 출판을 했던 겁니다.
  참으로 한 인간의 생명을 그렇게 알버트 슈바이처처럼 연소했으면 했고, 그렇게, 원대한
한 청년의 꿈을 꾸었던 겁니다.
  매일같이 계속되던 정치 파벌 싸움은 드디어 6⸱25 동란을 초래하고 말았던 겁니다. 그 비참, 어찌 여기서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습니다.
  나는 언제고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 불안한 예고로 시집 이름을
『하루만의 위안』이라 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 시집은 이북으로 간 양운한(?) 시인이 신간평을 쓴 것을 마지막으로,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없어져 버렸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몇 권이나 남아 있는지, 동란은
이렇게 나의 분신을 앗아가 버렸던 겁니다. 참으로 아깝기 짝이 없습니다. 1,000부를 초판으로 찍었는데.
  이렇게 해서 나는 서둘러 나의 생존의 위안을 찾아갔던 겁니다. 물리, 수학 선생을 하면서, 하나, 둘, 문인들을 사귀면서. 1950년, 6⸱25 동란 이전을.
    
△ 이전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54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 다음글: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52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en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