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49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34
조회수: 63
 
11. 소라의 초상화

        당신네들이나
        영악하게 잘살으시지요
        나야 나대로히
        나의 생리에 맞는 의상을 찾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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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과격한 사람들이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 땐 참으로 심했었습니다. 조선문학가
동맹이니, 한국청년문필가협회(후에는 한국문인협회로 변모)이니, 뭐니, 뭐니, 참으로 많은
분파로 갈라져서 문학하는 사람들도 끼리끼리 작당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작당을 하는 사람들이 싫어서, 생리적으로 맞지 않아서, 그들하곤 먼 거리
에서 멀리 떨어져서, 내 스스로의 꿈의 좌절이라 할까 숙명의 아픔을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남이 남긴 이론이나, 실험의 결과라, 하는 것들이 추려져서 모여 있는 물리
교과서를 가르치기도 싫고,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갈 곳도 없고, 흥미 없는 물리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는 스스로가 심히 못마땅하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슬퍼지기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끼리끼리 날뛰고 있는데, 심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았던 우월감이 별안간 열등의식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 좌절의식을 이겨내는 데
이러한 소라의 자화상 같은 극단적인 소외감과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그 현실에서는
완전히 고립할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의 확인이며, 그 확실한 자각이며, 그 인식이었습니다.
  이 시를 쓰곤 가끔 기웃기웃하던 이웃하고도 완전히 담을 쌓고, 혼자서 혼자에 갇혀서
다가오는 숙명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실로 해방이 되고, 독립이 되었다는 조국
에서 나는 이편도, 저편도, 못 되는 완전한 이방인이 되고 말았던 겁니다. 나에겐 처음으로
닥치던 이데올로기며, 민족이며, 정치적 분위기였습니다.
  내가 동경고등사범학교에 다닐 때도 나는 자연과학책이나, 문학책이나, 철학책 이외는
책방에서도 돌아보지도 않았던 겁니다.
  정치학이나, 행정학이나, 경제학이나, 이러한 것들은 학문이 아니라, 그저 잡다한
응용물들이라고 무시해 버렸던 겁니다. 그러했던 것이, 지금 그러한 먼지 속에서 이렇게
시달릴 줄이야,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현실의 공포, 그 위협 속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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