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44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25
조회수: 62
 
6. 먼 꿈을

        소년은 어느덧 자라서 청년이 되어
        그 먼 꿈을 잡으려 바다를 건넜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어두운 시대
        청년이 된 소년은
        무서운 공습 아래서
        일본 식민지 조선인 학생을 살아야 했다.

        피가 다르고, 땀이 다르고,
        영혼이 다르고, 선조가 다른 이민족 손에서
        서슬이 시퍼런 감시를 받으며
        청년이 된 조선 소년은
        한없이 맑은 고독으로 곧은 젊음을 살았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이 나고
        청년이 된 조선 소년은 패전국에
        이루지 못한 꿈을 남기고
        해방이 되었다는 조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조국은 그립던 조국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이데올로기의 패싸움판
        청년이 된 꿈 많던 소년은
        자기 길을 찾을 길 없어
        푸르던 꿈을 던져 버려야만 했다.

        바닷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소라새끼처럼
        현실이라는 이 무서운 부조리 속에서
        거센 세파에 몰려
        모든 유산을 잃고 텅 빈 시 속으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위안처럼, 구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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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사범학교는 중학부를 보통과라고 했습니다. 이 보통과는 5년 과정이었습니다.
보통과를 졸업하고 진학하는 곳이 연습과라는 전문과정 이었습니다. 내가 있을 땐
2학년이었고, 그것이 3년으로 되면서 본과라 했습니다. 나는 이 연습과 2년 과정까지
다 마치고, 그러니까, 경성사범학교를 완전히 마치고 ‘쓸쓸한 갑충(甲虫)의 길’로
가기위해서 동경고등사범학교 이과 물리화학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실로 바쁜 학생 생활이었습니다. 활기찬 학생 생활이었습니다. 기숙사·강의실·실험실·
럭비 운동장, 이렇게 눈코 뜰 사이 없이 나는 시간을 써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쟁 말기에 들어가자, 동경은 자주 B29의 공습을 받게 되고 수업은 늘
공포에 싸여 갔습니다. 나는 이러다가 폭격에 맞아 죽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님을 한번 뵙고, 내 운명에 내 생명은 맡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3학년 재학 중 일시 귀국이라는 마음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그것이 끝끝내 종전이 되어서 나는 그대로 경성사범학교 선생으로 눌러 앉게 되었습니다.
  나는 귀국하자마자 나의 모교인 경성사범학교 물리화학실에서 실험을 하면서 한편
학생들에게 물리를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학교장 명령으로. 그러니까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해방이 되자 그대로 눌러앉아서 선생 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실로 그 원대한 꿈은
패전국 일본에 두고 온 셈이 됩니다.
  해방 후에도 그 물리화학을 계속 공부하려고 했으나, 연구실도 없고, 실험실도 없고,
나를 이끌어줄 만한 사람도 없고 해서 나는 크게 꿈의 좌절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꿈의
좌절은 시를 낳게 했습니다.
  나는 중학교 시절, 나를 이끌어 올리는 말(言語)을 찾아내기 위해서 시를 많이
읽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혼의 에너지를 나는 시(詩)에서 얻어냈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 독서의 힘이 해방 후 나를 시의 세계로 인도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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