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76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8 13:19
조회수: 137
 
37 술집촌 작센 하우젠

        나는 오페라 가수가 되려고 했었습니다
        나는 카루소가 되려고 했었습니다
        나는 나의 목소리로 온 세계를 울려 보려고 했었습니다
        나는 나의 목소리로 온 하늘을 정복해 보려고 했었습니다
        나는 나의 목소리로 온 시간을 멈추게 해 보려고 했었습니다
        만민의 가슴 가슴에
        나와 나의 노래를 묻어 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잘것없는
        교통 회사 샐러리맨, 결혼을 하고 보니
        아이 새끼들은 늘고, 매달리는 것들은 많아져서
        오페라고 가수고 카루소고 다 집어치우고
        지금은 보시다시피
        교통 회사 샐러리맨
        저녁마다 이곳이 나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저녁마다 서민들끼리 흥겨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구시가 뒷골목
        술집촌 작센 하우젠
        숙녀 신사가 어깨동무로
        깊어 가는 인생의 뒷골목
        “구텐 나하트!”
        오페라 가수가 되려다
        아이 새끼들 때문에 포기한 나의 벗은
        이 막⸱삼 막⸱사 막⸱오 막⸱⸱⸱⸱⸱
        지금은 나를 취하게 하는
        장면으로 들어간다.
                                      
                                   시집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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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7월, 방학에 서독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제29차 국제 P.E.N. 대회가 열렸습니다.
  나는 이 일행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구라파 여행을 했던 겁니다. 내가 이렇게 국제 P.E.N. 대회에 참가했던 것은 주로 여행을 하고 싶었던 까닭이었습니다. 회의 목적이 아니라, 그것에 부수되는 세계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회 기간 동안에 주요섭 씨와 나는, 주요섭 씨와 친숙한 가정에서 온 독일 유학생의 안내로 이집 저집 술집 구경을 많이 했습니다.
  이 작센 하우젠이 그 술집촌들이었습니다. 노천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길가가 술집들이었습니다. 맥주를 흥겹게 마시고들 있었습니다.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남녀가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나도 그들이 껴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들의 명동처럼, 대단히 흥겨운 술집촌이었습니다. 이렇게 세계는 어디서나 저녁 술집에선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공산주의고, 자본주의고, 사회주의고,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술집에선 온 세계가 그저 흥겹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낮에는 정치로 꽁꽁 묶여 있다가, 밤이면 이렇게 술집에서 완전히 풀려서 온 세계는 사람으로(인간으로, 인류로) 하나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정치는 사람들을(백성들을) 꽁꽁 묶어 놓지만, 인간들은 그렇게 묶여서는 살 수 없는 것, 밤이면 술집에서 완전히 인간으로 하나가 되는 겁니다. 세계 어디에서나.
  소비에트에서 그럴 것이고, 동구라파 공산국가에서도 그럴 것이고, 쿠바 같은, 혹은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도 그럴 것이 아닌가, 나는 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사회주의 국가이고, 자본주의 국가이고, 다 그 벽이 무너져서, 어디나 인간주의 국가가 되어 있지만.
  그리운 그 얼굴들, 지금도 그렇게 즐겁게 작센 하우젠은 저녁마다 흥겨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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