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74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8 13:16
조회수: 93
 
35 銀座 夜景


        축축한 페이브먼트 긴자 뒷골목
        태풍이 뿌리는 심한 가랑비
        밤 깊이 계집의 마음이 혼자 젖는다

        밤 하늘이 좁아진 아프레의 거리
        공중 스트립쇼 네온의 거리 긴자 뒷골목
        꽃 파는 여인들이 젖어내린다

        십 원 오십 원 동전 은전의 거리
        현금에 깔린 네온의 거리 긴자 뒷골목
        밤낮이 없이 밤이 젖어내린다

        축축한 페이브먼트 긴자 뒷골목
        태풍에 싸인 이국 밤거리 가랑비 맞아
        밤 깊이 여심이 혼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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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 9월에 일본 동경에서 제27회 국제 P.E.N. 클럽 대회가 열렸습니다. 동양에서 처음 열리는 펜 대회라고 해서 우리 나라에서도 19명이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디 패스포트가 나옵니까. 참으로 더럽게 관리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 치하였습니다. 끝끝내 패스포트가 안 나오고 있다가 대통령 비서로 있던 김광섭(金珖燮) 시인이 서대문 경무대의 이기붕 씨에게 부탁을 해서 출발 전 하루 만에 패스포트가 나왔습니다. 일본에 가서도 일본 작가들하고 말을 하지 말라는 조건이 붙어서.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동경으로 갔던 겁니다.
  그 때 일본 P.E.N. 클럽 회장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이었습니다. 일본 산게이 신문(産經新聞) 홀에서 동시통역으로 대회는 이루어졌습니다.
  낮에는 대회장에서, 밤에는 밤거리 술집에서, 나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도쿄를 쏘다녔습니다. 동창생들도 만나고, 나는 동경고등사범학교 시절 럭비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학교 시절엔 변변히 동경 구경도 못했던 겁니다. 매일같이 기숙사에서, 강의실에서, 실험실에서, 운동장에서 지내야만 했기 때문에 동경 거리를 구경하러 나올 짬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틈이 나는 대로 혼자서 동경 시내를 이 거리, 저 거리 헤매면서 동경 냄세를 맡고 다녔던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은 실로 동전 한 닢처럼 정이 붙고 정이 떨어지는 얄팍한 약은 사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9월은 때마침 태풍이 지나가는 계절이라, 비가 늘 비슬비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기분에 맞게, 이 시처럼.
  이렇게 해서 나는 P.E.N.대회에 다니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실로 많은 나라를 구경하게 되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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