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70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8 13:11
조회수: 93
 
31 비는 내리는데 (미도파 부근)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그대로 어둠이 되는 미도파 앞을 비는 내리는데
        서울 시민들의 머리 위를 비는 내리는데

        비에 젖은 그리운 얼굴들이
        서울의 추녀 아래로 비를 멈추는데
        진종일을 후즐근히 내 마음은 젖어내리는데

        넓은 유리창으로 층층이 비는 흘러내리는데
        아스팔트로 네거리로 빗물이 흘러내리는데
        그대로 발들을 멈춘 채 밤은 내리는데

        내 마음 속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내 마음 밖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막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가난한 방에 가난한 침대 위에
        가난한 시인의 애인아⸱⸱⸱⸱⸱ 어두운 창을 닫고
        쓸쓸한 인생을 그대로 비는 내리는데

        아무런 기쁨도 없이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데
        하루가 오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미도파 앞에 발을 멈춘 채 내 마음에 밤은 내리는데.

                                                   시집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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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사랑이 가기전에』(1955, 정음사)가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판매되어 가자, 서대문에 있는 성문각(成文閣)이라는 출판사에서 원고를 사러 나를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1957년 이른 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무렵 나는 서울고등학교에서 물리, 수학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학교 몰래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과에 ‘현대시론’을 맡아가지고 출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학장은 백철(白鐵), ‘현대소설론’은 최인욱(崔仁旭) 씨가 맡아가지고 있었습니다.
  원고청탁을 받고, 나는 그 동안 써 놓았던 시들을 정리하고, 새로 추가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을 한 시집으로 묶을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내가 걸어다니고 있는 거리, 내가 출입하고 있는 다방, 내가 출입하고 있는 술집, 서점, 내가 산책하고 있는 공원, 광장 등등을 주제와 소재로 시를 쓰면서 프랑스 시인들이 자기들의 수도, 파리를 사랑하고 노래하듯이, 나도 그렇게 이 불쌍한 서울을, 사랑과 노래로 살고 싶었던 겁니다. 1957년 11월 20일이 그 출판 날짜로 되어 있습니다.
  시집 첫머리에 서시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서울은 극동의 별,
        이 별이 꺼지면 우리들은 고향을 잃는다.

  6⸱25 같은 공산 침략을 경계한 거지요. 다시 한번 공산 세력에 침략을 당하면 우리 자유시민은, 그 소중한 자유, 그 고향을 잃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참으로 공산 세력은 무자비한 무서운 죽음의 물결이었습니다.
  이 시는 이 시집 머리에 가까운 부분에 실려 있는 미도파 부근의 저녁 풍경입니다. 가난한 샐러리맨들의 서민생활을 그려 본 겁니다. 지금은 우산이 흔해 빠졌지만 그땐 비닐 우산도 귀할 때였습니다.
  어둠이 내리는 비 오는 도시 풍경,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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