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12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3-09-01 18:17
조회수: 327
 

기다림


기다리는 게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비밀인가
가쁘게 목타게 살아가는 나날을 이어 주는 숨은 지하수가 아닌가

먼 곳에서 아물아물
가물거리며 다가오는 듯한
기별 같은 거, 소식 같은 거
기다리는 게 있다는 건
얼마나 아련스러운 위안이랴

사방 천지, 모두 차단된 거 같은 멍멍한 이 세상에서, 엄동 설한에
겨울물처럼 숨쉬고 있는
기다림 같은 게 있다는 건
얼마나 애절한 사랑이랴

무수한 사람들에게 채여
얼 얼 방향을 잃고 허둥거리는
이른 봄벌레처럼 처진 자리에
아찔 아찔 아찔거리는
기다림 같은 게 있다는 건
얼마나 보살 같은 따사로움이랴

보일 듯이, 잡힐 듯이, 들릴 듯이
가까운 어느 곳에
기다림 같은 것이 아동거리는 건
얼마나 잔인한 그리움이랴

아, 기다림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독한 긴, 긴, 벌이던가.


詩想노트

실로 이 시처럼,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 기다려진다는 건, 대단히 너그러운 기쁨이라 하겠습니다.
기다림이 없고, 기다려지는 것이 없는 사람은 그만큼 무미건조한 인생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나같이 성급한 사람에겐 고통이며, 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그 기다림이 하나 지나가면, 또 다른 기다림이 먼 곳에서 가물가물 가물거리고, 또 그 가물거리던 기다림이 막상 다가서서 지나가면, 또 먼 곳에 다른 기다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인생은 끝없이 기다림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여정이 아닐까요.
이 기다림은 마음이 조급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고통스러운 인내요, 마음이 느긋한 사람에 있어서는 즐거운 꿈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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