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98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3-07-14 15:04
조회수: 295
 

하루 만의 위안慰安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 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 날이 온다
그 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 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 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詩想노트

늘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쉰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매일 이 생각 속에서 자살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나의 전인생, 전인생은 단하루라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 나는 자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심한 꿈의 좌절감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한 인간이라 자살의 문턱까지 가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하는 생각으로 그 보이지 않는 ‘내일’을 기다리며 연명을 해왔습니다.
진정 죽는다면, 자살을 한다면 ‘모든 것은 잊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기 위하여 이러한 시를 썼던 겁니다.
애착을 버리기 위하여 이 세상의 미련을 버리기 위하여 수없이 만나며 수없이 헤어진 이름도 안면도 없는 그 사람들처럼 잊어야 한다는 마음을 써가면서 이러한 모놀로그(독백獨白)를 썼던 겁니다.
이러한 모두를 다 순간적으로 깨끗이 잊어버려야만 가벼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매일매일을 이러한 훈련을 하면서 그 고비를 넘기고 있었던 겁니다.
이 시는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慰安(1950.4)󰡕에 들어있는 그 대표작입니다.
지금 노래로도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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