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77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8 13:20
조회수: 73
 
38 런던


        연기와 안개의 서울이라는
        신사 도시 런던은
        1959년 칠월 말 — 오늘은
        가는 비 내리는 旅窓

        ‘의회의 어머니’라는
        대영제국 의사당 시계탑 ‘빅 벤’의
        때를 알리는 시계 소리

        클랙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팔백여 만 시민의 도시가
        눈 아래 젖는다

        지금 나의 위치는 민주주의의
        옥상
        육 펜스 코인이 자유를 보장하는 곳
        피 흘린 지성이 종을 잡은 곳

        정치는 벗을 모으고
        고독한 주권

        연기와 안개의 서울, 런던은
        지금 가는 비 내리는 나의 여창
        ‘의회의 어머니’가 때를 알리는
        시계탑 부근.

                                      시집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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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국제 P.E.N. 대회가 끝나고, 일행은 각자 각자 여행하기 위해서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져 가고, 나는 주요섭 씨와 일행이 되어 구라파 각지를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독일에서 벗어나 맨 먼저 간 곳이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에선, 런던, 옥스퍼드, 스트래트퍼드 온 에이븐, 그러니까 우선 런던을 구경하고, 옥스퍼드 대학촌을 구경하고, 셰익스피어의 고향을 구경했던 겁니다.
  런던은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뜻밖에 이곳에서 나는 박태진(朴泰鎭) 시인을 만났습니다. 호텔까지 찾아와서, 반가운 나머지 술집으로 갔습니다. 선술집이었습니다. 런던의 술집은 어디나 이렇게 서서 마신다고 했습니다. 뿌연 어둠 속에 가득히 술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박태진 시인은 극동해운의 구라파(런던) 주재원으로 영국에 나와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구라파 여러 현지 시인들도 몇몇 알고 있었습니다. 문학청년 기분에 대단히 부럽게 보였습니다. 나도 이런 곳에 한 일이 년 유학이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하이드 파크에 가서 바이런 동상 아래서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동상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고, 나의 청춘이 작게만 보이곤 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 구내를 걸을 때도, 나의 학창 생활이 작게만 보였습니다. 일본 동경에선 가슴을 펴고 다니던 패기만만한 학생이었지만.
  셰익스피어 마을에 가서 위대한 한 인간의 존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온 세계가 이곳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위대한 인간은 이렇게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한 개의 한촌(寒村)을 위대한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온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고향은 인물을 배출하고, 인물은 고향을 빛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 고향 난실리를 생각했습니다. 먼 먼 대한민국,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라는 작은 마을을. 어머님이 누워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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