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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金素雲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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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정충량·박기원·이진섭·유호·안의섭·신태민·김기림·이봉구·김광균·장만영·박인환·김병욱·
양병식·송지영·신상초·이태직·헤르만 실밤·이헌구·이하윤·변영로·오종식·김동리·손소희·조연현·
오영수·한노단·조영암·임긍재·김환기·이해랑·이인범·윤용하·이한직·유두연·박연희·이명온·김말봉·
김소운·오상순·안수길·김윤성·오영진·윤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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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터졌다. 인민군이 순식간에 서울을 침략하고 인천을 점령했다. 헤르만은 납치되고 그의 소식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도 떠난 세월, 떠난 사람. 지금 살아 있으면 75세, 혹은 76세. 나는 헤르만처럼 우수에 잠겨 산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는 스스로를 실연의 천재라고 했다.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은 300부를 내가 인수하고 700부를 그때 명동에 있던 건국서점에 총판을 위탁했다. 300부는 문인들에게 보내야 한다기에 장만영씨의 지시대로 우송을 했지만 채 다 배부도 못하고 한국전쟁이 난 것이다. 나의 예감대로.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 위험 속에서 살아야 한다.
부산으로 피난을 가선 광복동 네거리 ‘금강’다방이 문인·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또 한 곳은 역시 그 부근에 있었던 ‘밀다원’이라는 다방이었다. 이곳은 김동리·손소희·조연현·오영수 계열의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순수문학파.
매일같이 우리는 외인부대처럼 금강다방에 모였다. 김광주·한노단(韓路檀)·조영암(趙靈岩)·임긍재(林肯載)·김환기(金煥基)·이해랑(李海浪)·이인범(李仁範)·윤용하(尹龍河)·이한직·이헌구·이하윤·이진섭·유두연(劉斗演:영화감독)·박연희(朴淵禧)·이명온(李明溫)·김말봉(金末峰)·김소운, 이런 얼굴들이 떠오르지만 기억이 아물아물하다. 이렇게 적어보니 거의가 이미 세상 떠난 사람들이 아닌가.
김소운은 금강다방 건너편에 있던 토스트 집에서 만났다. 김광주씨의 안내로, 굵은 로이드 안경에 턱에 가꾼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굵직굵직한 골격과 붉은색 감도는 얼굴, 그리고 재치있는 화술, 문학에 대한 박식한 이야기, 그 광범한 경험세게, 나에겐 신천지를 만난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무서운 자존심 결벽성·정열·근면, 소지품에 대한 고급성, 돈에 대한 호탕성, 그리고 온몸에 가득히 흐르고 있는 멋과 낭만과 휴머니즘.
싫은 사람하곤 먼 거리를 두고 자유스러운 자기 공간을 유지하고 있는 생활태도, 과연 시인 김소운은 강한 의지의 인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김소운을 알게 된 건 먼저 책이었다. 동경 유학시절이었다. 그 유명한 암파문고에 끼어 있던 조선동요선(1933)과 조선민요선(1933), 그리고 조선시집 (상·중)(홍풍관, 1943), 그것이 나를 먼저 놀라게 했다. ‘조선에도 이러한 시인이 있었나?’ 하는 존경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거꾸로 우리 동요·민요·근대시를 일본어로 읽기 시작했던 거다. 고향에 깔린 그 아름다운 정신의 흐름을 일본어를 통해서 처음으로 접했던 거다. 얼마나 모순된 나의 성장기였던가.
그 김소운을 피난지 부산에서 처음 대면했고, 매일 밤을 술로 같이 지내게 되었다. 문학에 젖어서, 인간에 젖어서, 산다는 그 어두운 낭만에 젖어서. 김광주·이진섭·한노단·이해랑·이인범·이명온, 때론 이한직, 때론 조영암, 때론 임긍재, 때론 윤용하, 서로 뒤섞여서 거의 매일 국 제시장의 술집을 돌며 객지, 그 나그네살이를 견디어내고 있었다.
하루는 금강다방 건너편 토스트집에서 금강다방에 있는 김광주씨를 데리고 나오라 했다. 데리고 나오자 술집으로 향했다. 광복동 뒷골목에 ‘피가로’라는 다방이 있었다. 다방 문밖에 구멍가게를 작게 벌이고 있는 애꾸 노인이 있었다. 껌·양담배·라이터·헌 파이프, 이런 걸 팔고 있었다. 그 노인에 다가가더니 소운은 자기가 아껴 물던 파이프를 내놓고, 몇 푼의 돈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무슈, 이곳이 나의 스트릿 뱅크야.” 하고 웃었다. 그리고 양담배 한 보루를 사들었다. 그리고 소운이 잘 가는 토성국민학교 쪽 다릿가에 있는 작은 술집으로 갔다. 소운·김광주·한노단·이명온 여사가 일행. 가면서 하는 말이 “오늘 저녁 광주형이 저녁거리가 없어, 그러니 이걸......” 하면서 아까 파이프를 잡혀서 얻은 돈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걸 한 참 가지고 있다가 술집에서 어지간히 술이 돌아서 “김선생, 이거 소운이 주는 겁니다.” 하고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뭐야?” “쌀 살 돈이야.” 이렇게 말을 급히 전하며 술잔을 크게 돌렸다.
이 술집은 다릿목에 까치집같이 얹혀 있는 작은 하꼬방집, 대여섯이면 꽉 차는 오뎅안주집이다. 주인은 일본 여인, 자기 말로 소운이 좋아서 한국으로 나왔다는 거, 소운이 오는 날이면 다른 손님을 받질 않았다. 그날도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사가지고 간 양담배는 그 일본 여인에게 주는 선사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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