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90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4-05-31 11:26
조회수: 85
 
모윤숙毛允淑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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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윤숙·변영로·김광섭·김광주·이헌구·이무영·백철·조중훈·전혜린·주요섭·김성한·
조경희·전숙희·박태진·피터현·전봉래·김창석·최영해·천성환·최자현·조병문·박양균·
양주동·안수길·이하윤·최정희·전광용·김종문·이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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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석씨에 관해선 최영해씨 이야기 속에 들어 있지만 해방이 되자 그는 그의 재력으로 󰡔형상形象󰡕이라는 동인지를 가지고 있었다. 천성환·최자현·조병문·박양균씨 등이 초기 동인이었다. 천성환씨는 경성사범학교 나의 대선배였다. 그때 인천중학교(6년제)에서 국어교사로 있었다. 김창석씨와 천성환씨의 권유로 나도 동인이 되어 시를 발표하게 되었다. 1947년경인가? 이 󰡔형상󰡕 동인지는 순전히 김창석씨의 돈과 열성으로 2집인가, 3집까지 나오다가 만 것이지만, 문단에 동인이 있고, 동인지가 있다는 것도 나로서는 처음 경험한 것이다.
PEN클럽이 한국에서도 생기고, 문인들의 해외 출입이 이것을 통해서 힘들게, 힘들게나마 이루어져 갈 무렵엔 양주동(梁柱東) 선생도 자주 회합에 나오곤 했다. 양 박사는 친구들간에 아주 돈에 무섭고, 차 한잔, 술 한잔, 안 사는 사람으로 되어 있었지만 웬일인지 나에겐 늘 술을 사주었다. 그것도 동동주니, 소주니, 하는 싸구려술이 아니라 양주를.
양 박사는 늘 검은 지프차를 타고 명동에 나타나곤 했다. 그 당시 차를 타고 다니는 문인은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양 박사만이 차를 타고 다녔었다. 여러 대학에, 그리고 학원, 학관까지에도 출강을 하고 있 었다. 스스로 ‘국보 제1호’라고 칭하면서, 양 박사의 의기는 참으로 당당하고, 대단하였다.
양 박사는 나의 단골인 ‘카리레오’라는 양주집을 단골로 했다. “조시인, 갈까?" 하면 어디로를 묻지 않아도 “네.”하고 카리레오로 가곤 했다.
한 잔, 두 잔, 석 잔...... 술이 들어갈수록 양 박사의 머리는 실력을 발휘해갔다. T.S. 엘리어트, 샤를르 보들레르니, 폴 베르렌이니, 양 박사 입에서 나오는 시들이 영어 원시이며, 불어 원시이었다. 좔좔좔 쏟아져 나오는 영어의 시들, 불어의 시들, 도저히 손들 수밖에 없던 양 박사의 기억력, 참으로 감탄, 감탄, 감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생님, 돌아가실 땐 그 머리 반만 나에게 주고 가십시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실로 그러했다. 참으로 많은 시들을 원시 그대로 기억하면서 흥에 따라 암송하곤 했다. 문학청년처럼, 나는 그럴 때마다 문학에 흠뻑 젖어서 황홀경을 헤매곤 했다. 참으로 좋은 선배를 모시고 있다는 생각을 같이 하면서.
이렇게 황홀한 선배를 왜, 돈 안 쓰는 노랭이라고 했을까. 정말 친지간에 차 한잔, 술 한잔 안 샀단 말인가. 나에겐 그렇게 풍부하게 술을 사시던 그분이. 이곳에서 정말 한마디 한다면, 그렇게 내가 술을 사도 선배치고 술 한잔 답례로 나에게 사준 분은 없었다. 이헌구씨가 그러했고, 안수길씨가 그러했고, 김광섭씨가 그러했고, 이무영씨가 그러했고, 이하윤씨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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