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83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4-05-08 12:30
조회수: 121
 
이해랑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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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랑·성춘복·김광주·박동근·한노단·이인범·유치진·김진수·오영진·임긍재·박연희·
이진섭·윤용하·조영암·박인환·조좌호·조영식·방용구·백성희·황정순·오사랑·장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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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쓸쓸한 오해 같은 걸 들으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시로서.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이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오면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제목을 「공존의 이유」, 이렇게 얼결에 달았었다. 참으로 옛날 사람들이 말한 거처럼 친하면 친할수록 더욱 담담(淡淡)하게 사귈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정에 약하고 눈물이 많다. 정이 헤프고 마음이 약하다. 누구에게 싫은 말을 못하는 비현대적인 인간이다. 싫은 사람은 피하며 사는 약한 사람이다. 믿고 이야기한 것이 틀리게 반영되어 올 땐 심히 아파하고 후회하는, 긴 안목이 없는 순간적인 판단의 결점이 많은 성 격의 사나이다. 특히 배신 같은 거.
이 시가 많은 독자에게 번져나가자 약삭빠른 장사치들은 학생용 카드에 이 시를 이용하면서 엉뚱하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으로 인쇄해서 판매를 하는가 하면, 아래와 같이 변조해서 엽서를 만들어 팔아먹는 자들도 나타났다. 나 본인으로선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는 겨레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우리는 어디서나󰡕(엮은이 : 박석수, 1988.1.15)에서도, 그 변조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기로 합시다

우리의 웃음마저 짐이 된다면
그때 헤어집시다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합시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를 얘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내가 어디쯤에 간다는 것을 보일 수 없으며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합시다

우리 앞에 서글픈 그날이 오면
가벼운 눈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여기다 옮기기도 챙피하게 변질 변조되어서 해명처럼 기록해두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그 오독을 풀기 위해서.

그 후 아주 먼 거리에서 한노단씨와 나는 지나게 되었다. 나는 낭만으로 자주 들르고, 그는 조선일보 뒷골목 맥주홀을 고수하고 해서 자주 그 소식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어느 날, 작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대문에 있는 이화대학병원에서.
나는 소식을 듣자 그 길로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영안실에 장성한 두 아드님이 서 있었다. 실로 고적한 영안실, 너무나 쓸쓸한 연극의 종막처럼 느껴졌었다. 이미 15년 전 일이다.
그 후 신협도 활동이 부진해갔다. 단원들도 많이 작고해갔다.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분은 백성희·황정순·오사랑(서울예전 교수?), 그리고 장민호씨 등. 장민호씨는 지금 예술원회원으로 있어서 예술원 회합이 있을 때마다 만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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