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82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4-05-03 21:09
조회수: 134
 
이해랑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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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랑·성춘복·김광주·박동근·한노단·이인범·유치진·김진수·오영진·임긍재·박연희·
이진섭·윤용하·조영암·박인환·조좌호·조영식·방용구·백성희·황정순·오사랑·장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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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정음사에서 󰡔셰익스피어 전집󰡕이 완간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각 신문사 광고난이 셰익스피어 얼굴로 가득 찼었다. 번역자들이 열거되면서.
그러나 이 광고가 한노단씨와 나의 즐겁던 술자리를 망쳐놓았다. 한노단씨가 경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이름을 달고 나왔기 때문에 국제대학 학생들이 이게 뭔가, 방용구 학장에게 대들었다는 거다. 강의 시간에 방용구 학장이 나를 호출했다. 나는 그때 한노단씨와 저녁마다 술을 마시기 위해서, 혹은 방용구 학장과 술을 마시기 위해서, 국제대학에도 강사로 출강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요, 한노단씨는 어디가 전임이오?” 만나자마자 이렇게 대로해서 말을 폭발시켰다. 그렇게도 조용하기만 하던 분이, 그리고 평소에 누구에게도 큰 소리를 내지 않던 분이, 한마디도 싫은 말을 하지 않던 분이, 착하기만 한 분이, 충청북도 양반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이 말이 나에게서 순간 나와버렸다. 그리고 깊이 사과를 했다. 가볍게 생각을 했던 것이 이러한 대사건으로 번질 줄이야 누가 알았던가. 참으로 미안했다. 죄송했다. 그렇게도 착한 사람에게 잠시나마 괴로움을 끼쳐드려서.
학장실에서 나오자마자 한노단씨를 불러내서 서대문 다리께에 있던 술집 ‘고향’으로 갔다. 한잔 한잔 천천히 마시며 공범의식을 공감하면서 “자, 어떻게 하지요?” 의논을 했다. 술을 마실수록 방용구 학장에게 미안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둘이 다같이 하게 되었다. “국제대학을 전임으로 하시고, 경희대학을 강사로 하십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그날 밤 가벼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다음날 나는 대학에 출근하는 길로 조영식 총장실에 들러 사건의 전말을 다 이야기하고 경희대학은 강사로 있기로 허락을 받아냈다.
두 대학의 전임, 그 무렵 흔히들 있었던 일, 지금에 비하면 그 당시의 교수 월급이 그리 좋은 편이 못 되었다.
그달부터 우리 둘은 수입이 준 것이다. 공짜술같이 마시던 술이 웬 일인지 무거워지는 거 같았다. 참으로 소년시절 같은 기분으로 살았던 시절.
그 무렵 한노단씨는 조선일보 뒷골목에 있었던 아리스다방을 인수해서 경영하기도 하고, 그 앞에 맥주홀을 경영하기도 했다. 일체 자기 이야길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왜 다방이니 비어홀이니 하는 업종에 손을 댔는지는 지금도 궁금한 일이다.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이 무렵 나는 자주 아리스다방 부근엔 가질 못했다. 주로 종로 네거리에 새로 생긴 맥주홀 ‘낭만’이라는 곳을 단골로, 저녁이면 그곳에서 술을 마셨다. 때문에 아리스다방 골목의 소식에 대해선 먼 거리에 있었다. 이곳 아리스다방 골목엔 주로 󰡔자유문학󰡕 출신의 문인들이 단골로 모여 진을 친 것으로 안다. 그곳에서 무슨 오해 같은 말들이 나에게 들려오곤 했다. 자주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친하던 친구들끼리도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 것 같은 그러한 쓸쓸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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