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90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3-06-16 11:40
조회수: 283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詩想노트

이 시 ‘낙엽끼리 모여 산다’는 󰡔하루만의 위안󰡕이란 시집에 들어 있는 겁니다.
모든 인간이 그저 낙엽같이 생각이 되었던 겁니다. 우익이고 좌익이고 해방 직후 건국을 준비하던 무리들이 모조리 내 눈엔 그저 낙엽처럼 느껴지며, 나는 늘 나의 인생행로에 있어서의 절망감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가망이 없는 내 인생, 나는 이쪽도 싫고, 저쪽도 싫고, 이쪽에도 낄 수가 없고, 저쪽에 낄 수도 없는 붙을 곳 없는 존재, 설 곳이 없는 땅, 조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국이 없는 것도 아닌 신세, 이러면서 선뜻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매일매일, 실로
“보이지 않는 곳(내일)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 왔던 겁니다. 살아 왔다는 것보다 견디어 온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생활이 아니라, 생명을 버리지 못한 자로서의 생존이었습니다. 이 시처럼.
이러한 절망을 지내다가 예상한 대로 6ㆍ25동란이 터졌던 겁니다. 불안한 예감으로 살았던 것이 그 불안한 예감대로 인민군들의 갑작스러운 남침으로 인해서 우리 남한의 낙엽들은 혼비백산한 겁니다. 서로 으릉으릉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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