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84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3-05-26 11:32
조회수: 315
 

나무를 심으며


편운재片雲齋 앞뜰에, 뒷뜰에, 아버님,
어머님 묘소 앞에,
나무를 심는다

살아 생전에 그 열매를,
그 너울거리는 가지 가지를, 그 그늘을,
볼 수 없겠지, 이런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어린 묘목을 심는다

아, 얼마나 많았던 세월이던가
바람에 몰려 떠돌던 세월
실로 발없는 구름이 아니었던가

이제 고향에 내려
나무를 심는 마음의 자리

언제 이 나무들은
뿌리 내리고, 가지 치고, 꽃 피우고,
열매 열고, 잎 피어
지나는 사람에게 그늘 내릴까

제대로 가꾼 나무 하나 없는 생애
간 세월이 덧없는 구름이었던가
이제 이 나무, 나무 심음에
잘 자라서
먼 훗날, 내 흔적이나 되려나

‘구름을 살다 간 사람 있었노라’고,
이곳에.


詩想노트

미국의 시인 데니스 레버토브(Denise Levertov, 1923~1997)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시인은 시에 의해서 연루되는 악기(樂器)이지만, 동시에 창조자이다. 그리고 시인에게 보이는 것을 다른 보이지 않는 타인(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시인의 의무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같은 동포(同胞)이니까. 모든 공간(띄어쓰기), 콤마, 피리어드는 시가 살아 있는 부분이며, 그 자체의 기능(작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신체의 모든 근육과 모혈(毛穴)이 그 자체의 기능(작업)을 가지고 있듯이 행이 바꾸어지는 그 방법은(연결連結) 시의 생명을 좌우하는 힘(역할役割)을 갖는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한다. 그러나 내용은 형식을 통해서만이 발견된다.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이 그것은 비밀이다. 형식의 계시(啓示)는 그 자체 희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하나의 완벽한 시는 그 자체가 큰 희열이며, 창조의 은총입니다. 내용과 형식의 완전 일치, 그것이 그리 쉬운 일입니까.
그러나 시인은 그 '완전한 희열을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하며, 찾으며 그 완전을 기하려 노력을 하는 거지요.
시를 만든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그 자체가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그리고 시인에게 있어서 큰 축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러한 좋은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그리고,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1822~1888)라는 영국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는 결코 종교는 아니지만 종교의 대용물로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이 말을 믿으며, 이 말의 어투로 “시는 결코 철학은 아니지만, 철학의 대용물로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일본 시인 무라노 시로의 말에 더욱 공감을 느끼고 있는 겁니다.
실로 나는 시로써 문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철학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종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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