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25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10-31 13:15
조회수: 331
 
186. 1999년 10월 28일, 오늘 이사를 했다. 비 오는 중에도 아들의 식구들은 약속한 날이라고 이사를 강행했다. 이것도 나의 일인지 비가 내리다니, 참으로 나의 일생은 무슨 비와 인연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잠시 이사해서 살던 명륜동 1가 43번지 나산빌라 203호에서, 다시 옛집 혜화동 107번지로 이사 왔다. 완전히 수리를 하고. 1967년 4월 15일, 이 집을 신축하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이집을 짓고 먼저 떠난 아내 생각이 고마움으로 간절하다. 이제 다시 수리해서 아들하고 같이 살다 죽을 생각을 하니, 이 집이 이승에서의 나의 마지막 서울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조용히 반은 죽은 사람처럼 고요히 살아야지. 아들, 며느리, 손녀, 손자, 네 식구와 조용히 성미 죽이고 고요히 죽은 듯이 살아가야지. 나의 시집 제 50숙 『고요한 귀향』도 이미 다 그 원고를 만들어서 내년 2000년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판이니, 이제 나의 인생, 모든 것이 끝난 것 같다. 12월 중순 열리는 예술원 총회에서 4년간 맡아서 일해 오던 회장 자리도 다른 분에게 물려주면, 공식적으로 나의 일은 다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참으로 열심히 잘도 살아왔고, 잘도 이루고, 내가 이루고 싶었던 나를 그런대로 잘 이룬 것 같아 한숨 놓이기도 한다.
(『편운재에서의 편지』, 108~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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