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41호, 하루만의 위안(慰安)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2-04-03 10:48
조회수: 3594
 
잊어 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 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 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 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 날이 온다
그 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 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 날이 오면
잊어 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 버려야만 한다.

시집『하루만의 위안(慰安)』에서.

    
  아내가 병원을 경영하고 있다는 것이 마침내 내가 아내에게 얹혀사는 것 같은 오해가 계속 나의 생활에서 몹시 나의 자존심을 어지럽게 하고, 아내의 돈과 내 돈의 남새도 다르게 느껴지고 집안도 결혼 당시 꿈꾸었던 것과는 달리 나를 밸 없이 쓸쓸케 해 가고, 내 스스로의 길로 막힌 것 같이 느껴지기만 해서, 나는 그 당시 항상 ‘자살’이라는 유혹에 빠져 가기만 했습니다.

...

  나는 서울고등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이들, 작은 나의 구원의 마을을 찾아서 명동, 그들이 늘 차를 마시곤 하는 다방으로 갔었습니다. 다방 ‘휘가로’(방송 극작가 이진섭 누이가 경영).
  그 당시 명동은 해방 후의 열기로 어수선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이 주고 받는 문학 이야기, 예술의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길 주로 듣고 있다가, 밤이 어두워지면 ‘명동장’, ‘무궁원’, 이러한 선술집으로 이봉구, 박인환, 이렇게 동행하곤 했었습니다. 김기림, 김광균, 장만영, 김경린, 양병식 등은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렇게 술을 마시곤 서울고등학교 도서관, 쓸쓸한 나의 방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이 시처럼, 하루를 죽으러.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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