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19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10-11 18:48
조회수: 51
 

180. 아내가 유서 없이 세상을 먼저 떠나서 아들, 딸 간에 불화가 보였기 때문에, 나도 언젠가는 떠나는 몸, 유서를 써야지 했다.
  여행을 떠나는 아침, 혹시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얼마 남지 않은 저금통장의 돈과, 들어올지도 모르는 내 저작물에서 생기는 인세 등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썼다. 법률사무소에 가서 변호사 입회하에 써야 한다지만 번거로워서 내 육필(肉筆)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가 되리라 생각하고.

     유서

     1. 나는 가정에서는 실패했으나, 내 인생에선 후회 없이 살아 왔다. 모든 명예를 누리
         고. 가족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2. 내가 남기는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2/3는 편운문학상 기금으로 하되, 진형이가  
         맡아서 관리한다. 편운재 청화헌도.
     3. 내 저작물에서 나오는 돈이 있으면, 그 돈은 편운문학상 기금에 보탠다.
     4. 내 돈의 나머지 1/3은 진형(眞衡), 원(嫄), 양(洋), 영(泳), 골고루 싸우지 말고      
        법대로 나눈다.
     5.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서로 싸우지 마라. 내가 죽은 뒤, 사이좋게 지내기 바란다.
                                                            1998. 11. 24.
                                                            아버지

  이렇게 쓰고 나니, 마음이 가벼우면서도 참으로 돈이 얼마나 인생의 부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내 생명이 더럽게 길어서 입원 생활이나 오래하다가 죽으면, 이 얼마 되지 않는 돈도 다 써 버리고 남기는 돈 하나 없게 되어 이것도 허사이지……, 슬픔이 꽉 찼다. 이러한 것이 인생의 종말인가 하고.
(『편운재에서의 편지』, 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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