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32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11-25 14:50
조회수: 107
 
193. 2002년 6월 20일, 웬일인지 나는 요즘 기운이 없고, 식욕까지 잃고, 매사가 힘이 들고, 귀찮고, 그저 하는 일 없이 오전이 가고, 오후가 가고, 하루가 지나간다. 이러다간 아주 자리에 누워 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속수무책, 그저 그러한 나를 바라다보고 있을 뿐이다.
  아침저녁으로 몇 숟가락 밥을 넘기는 것이 나의 원동력의 전부이기에 억지로라도 기운을 내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을 양으로 식사를 하고 있으니, 내심 어찌할 수 없는 근심,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올 것이 서서히 올 것이라고 알면서 살아왔지만, 갑작스러운 신체 이상이라 이런 것 저런 것 근심, 근심이다. 물론 작품도 하나 나오지 않는다.
  85세까지는 살겠지, 하던 예상이 빗나가는 것 같다. 올 여름을 어떻게 지내며, 또 그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그저 근심, 근심 걱정뿐이다. 생명은 예상대로 확, 일시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앓을 만큼 앓고서야 끝나는 것이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 무서운 공포감을 토해낼 수가 없다.
  지금 이만큼 글을 써 오면서 전과 같이 생각이 줄줄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강동강 시상이 잘려져서 이어가기가 힘든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지금 나는 이렇게 무너져 가고 있다. 한 번 육체를 잃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잃게 마련인 것 같다.
  문호들이 절필을 한다는 글을 수없이 읽어 왔지만, 실로 절필이라는 말이 실감나고 있다.

  절필! 이렇게 소리 없이 올 줄이야.
(『편운재에서의 편지』, 244~245쪽. 마지막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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