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21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10-18 17:50
조회수: 122
 

182. 1999년 3월 13일은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난 지 일주기가 되는 날이어서 원남동 원불교 교당에서 그 일주기 법회가 있었다.
  참으로 세월은 일 분 일 초를 태곳적부터 정확히 지키면서 정확한 속도로 흘러내리면서 정확하게 오늘 이 자리까지 와선 또 정확한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세월은 같은 속도로 흘러내리지만, 늙어 갈수록 그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기분 탓인지, 일 탓인지.
  실로 나의 아내는 ‘시(詩)의 그늘’이었다. 아내의 호대로. 아내는 나에게 시집을 올 때, 자기 호는 시영(詩影)이라고 했다. 이 호는 자기가 진명여학교에 다닐 때, 지리 선생님이 지어 주었다고 했다.
  나는 이때만 해도 시인이 아니었다. 동경고등사범학교를 나오자마자 내가 다녔던 경성 사범학교에 취직이 되어, 내가 동경에서 공부했던 물리를 담당하는 교유(교사)로 있었던 거다. 이렇게 물리 선생을 하면서 나는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거다. 나의 장인도 내가 착실한 자연과학 선생이라는 것을 믿고 아내를 내준 것 같았다. 아내도 그렇게 믿고.
  그러나 나는 물리 선생을 하면서 나의 앞날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시를 위안으로 삼아 쓰기 시작했던 거다. 해방 직후는 자연과학을 더 공부할 여건이 우리나라에선 없었다. 교수도 없고 시설도 없고, 연구실도 없고.
  자연히 나는 ‘내가 창조하는 나의 인생’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실로 쓸쓸해서, 그 ‘꿈의 좌절’을 시로 풀어 나갔던 거다. 월급쟁이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월급쟁이는 사실 현대의 노예이다.
  이렇게 해서 시를 시작한 것이 오늘날 이렇게 시인으로 늙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내의 호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시를 쓰면서 아내에게 참으로 아픔도 많이 주었다. 아내의 호대로 아내는 나의 그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난다.
(『편운재에서의 편지』, 4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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