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79호 대서양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3-01-02 15:07
조회수: 3120
 
대서양

조병화

성에서 내려보는 테제 강
그리고 그 하구에 펼쳐 있는 대서양
십자탑과 나 사이에 하늘이 있다.

옛날을 그리는 대포들 띄엄띄엄
그 자리들에 있고
성안에서 입을 맞추는 관광객
비둘기가 난다

내려다보면 가득한 지붕 지붕
하늘과 바다에 닿고
항구에 모여든 국적 다른 배들
기폭에 기폭에 여수를 날린다

지구는 둥근 거
돌고 돌고 돌다 목숨 떨어지면, 그뿐
인간은 가는 나그네
변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변하는 인간을 산다

하늘은 멀다
바다는 푸르다
공작이 꼬릴 편다.
(1969. 9. 24. ‘Castelo de Sào Jorge'에서)
                    
  시집『내 고향 먼 곳에』에서


     테제 강은 리스본 시가지를 흐르고 있는 바다와 같은 큰 강이었습니다. 이 강을 끼고 북쪽은 구시가지이고, 남쪽은 신시가지 같은 인상을 가졌습니다. 역시 옛날에 큰 식민지를 지배하던 나라이어서 큰 건물들, 조각들, 그 도시 규모가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좀 생활이 궁해졌는지, 우리나라 청계천이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 같은 풍경들이 우글우글했습니다.
     옛날 내가 경성사범학교 시절 기숙사에서 결심했던 ‘보다 인생을 많이 살다가는 것이다. 몸으로 이 눈에 보이는 대자연을(지구), 책으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상상의 세계를(영혼)’, 그 꿈이 드디어 이 곳 대서양 연안 도시 ‘대륙의 끝, 바다의 시작’이라는 리스본까지 구경을 하게 되었으니, 아, 그 꿈이 반은 이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1995년, 그러니까 내가 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한 지 벌써 11년째 됩니다만, 지금 생각을 해보니 내가 경성사범학교 1학년 기숙사 시절 꿈꾸었던 그 꿈을 후회없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인생은 이렇게 꿈을 사는 겁니다.
     나의 시는 그 꿈을 사는 길이며, 증거이며, 그 흔적입니다. 좋건, 좋지 않건.
     나의 시는 나의 존재의 증거이며, 그 생존의 숙소입니다.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16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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