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01호 (『세월은 자란다』 이후의 이야기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08-08 14:45
조회수: 197
 
162. 1996년 9월 27일이 추석이라 연휴가 시작되어 9월 29일까지 서울은 텅 빈 공간이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텅 빈 공간이었다. 이 텅 빈 거대한 공간만큼 나는 외롭고 쓸쓸했다.
  아내가 입원하고 있는 서울 중앙병원까지 식량이나 일용품이나 옷가지까지 택시를 타고 날라다 주었다. 그리고 환자가 날로 쇠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일생을 열심히 일하고, 일생을 부지런히 살고, 무엇보다도 내가 화를 낼 정도로 물건을 아끼면서 절약하면서, 치사하도록 검약하게 살아온 생애가 이렇게 초라하게 병실 한 귀퉁이에서 신음하고 있으니, 대단히 가슴이 아프고 불쌍하게 보였다. 인생의 종말은 누구나 이렇게 약하고, 초라하고, 걷잡을 수 없이 가련한 존재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지만, 실로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연민의 정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집사람은 중앙병원에서 삼성의료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러니까 아내가 먼저 중앙병원으로 입원을 한 것은 지난 추석 전 9월 24일, 연휴가 계속되며 별 좋은 치료를 하지 못한 채, 불친절한 의사들에게 분개를 해서 삼성의료원으로 옮긴 것이 10월 1일, 드디어 10월 5일에 수술을 했다.
  나는 중앙병원에서 다소 분개하고 있었다. 요즘 병원들이 불친절하고 돈만 따지고 의사들의 훈련들이 제대로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입원하는 것이 죽으러 들어가는 인상을 갖게 한다. 환자는 그저 그들이 돈 벌기 위한 상품이고, 실험도구이지, 죽든 말든 적당히 적당한 시일을 보내곤 엄청난 입원비를 받곤 퇴원시키는 것이지, 아무런 책임감도 없고 의무감도 없고 동정심도 없고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연민의 정도 없는 비정한 인간들, 의사가 되면 다 그러한 성격으로 변해 버리는지, 참으로 사회가 무섭다. 주사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간호사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 이것들도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이건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지만, 그렇게 느껴 병원을 옮긴 것이다.
  다행히 삼성의료원 내과 부장 이원로 시인님이 잘 보살펴 주고, 의료원 원장으로 있는 한용철 박사가 구면이라서 안심이 되었지만, 환자로 누워 있는 아내를 보면 실로 참혹하였다.
(『외로우며 사랑하며』, 108~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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