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운金素雲씨와 그 주변
-----------------------------------------------------------------------------
김광주·정충량·박기원·이진섭·유호·안의섭·신태민·김기림·이봉구·김광균·장만영·박인환·김병욱·
양병식·송지영·신상초·이태직·헤르만 실밤·이헌구·이하윤·변영로·오종식·김동리·손소희·조연현·
오영수·한노단·조영암·임긍재·김환기·이해랑·이인범·윤용하·이한직·유두연·박연희·이명온·김말봉·
김소운·오상순·안수길·김윤성·오영진·윤효중
-----------------------------------------------------------------------------
세상에 나와서 처음 신문에 나의 시가 나타났다. 김광주 문화부장의 호의로, 그것이 ｢하늘｣이라는 시이다. 이 작품은 나의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慰安 속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제1시집이 나온 후의 첫 작품이다.
멀리 가고 싶은 하늘이다
그리운 것 없이 그리운 하늘이다
나는 옥상에 오른다
나와 유리流離한 관능이
과감한 하늘을 달리고
멀리 스치는 해후의 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끝에 구름은 탄다
구름 끝에
남은 청춘이 날을 샌다
창을 제치고
사랑아 가자 한다
하늘아 가자 한다
또다시 옥상에 서서
나는 중량에 서서
퓨리턴처럼
반항처럼
주로 먼 곳을 바라본다.
이 작품이 실린 경향신문(1949년 9월경 ?)이 나올 시간쯤 되어서 명동에 있는 ‘피가로 다방’으로 나갔다. 이 다방에 김기림·이봉구·김광균·장만영·박인환·김병욱·양병식, 이런 문인들이 자주 들렀다. 참으로 작품이 좋다고들 하면서 신문을 보여준다. 나는 얼떨떨해지면서 나의 얼굴이 화끈해오는 걸 느꼈다. 그날 밤엔 김병욱 시인도 끼어서 술을 마셨다. 김병욱 시인이 나에게 다가오면서 하는 말이 있다. “조형, 시 참 좋소. 그런데 박인환 시인과 술을 마실 땐 말을 조심해야 하오. 멋있는 말은 하지 마시오. 멋있는 말을 하면 그 말을 먼저 박인환이 써먹으니까. 언어에도 지문이 있는데 말이오.” 언어(말)에도 지문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확실히 언어에 그 말을 처음 쓴 사람의 지문이 있는 거다. 역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말 한마디 하더라도 신경을 쓰는 게 보통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문학하는 사람들하고 술을 마시면 배우는 점이 많구나 하면서 술잔을 돌렸다.
김병욱 시인도 재치가 있는 시인이었지만 박인환 시인은 그보다 몇갑절 눈치 재치가 빠른 감각의 시인이었다. 김병욱 시인은 서정성이 높은 로맨티스트였다. 항상 무언가 먼 곳을 헤매고 있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항상 소프트(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긴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 턱은 커크 더글라스처럼 약간 쑥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의 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무언가 허기진 눈알 같은 그 매혹적인 눈을. 박인환 시인하고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항상 먼저 멋있는 이야기를 해서 손해봤다는 식의 그의 말투가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그도 지금 사라졌다.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한국전쟁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떠난 세월, 떠난 사람, 저쪽으로 사라져갔다. 그립기 한이 없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