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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金起林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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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범, 장이욱, 김기림, 선우휘, 조윤제, 장만영, 김경린, 신석정, 김광균, 양병식, 이봉구, 박인환, 백 철, 박기준, 송지영, 박목월, 김용묵, 이현구, 이하윤, 서정주, 황순원, 홍효민, 조지훈, 박두진, 최태응, 조연현, 이 한, 이진섭, 김원규, 김광주 <등장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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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영 시인, 그 무렵 장 시인은 산호장(珊瑚莊)이라는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호화판 책들만 내던 멋있는 출판사였다. 편석촌의 기상도도 그 무렵 다시 출판되고 있었다. 산호문고도 나오고 있었다. 문고 출판은 우리나라에선 가장 앞서 있었다.
장 시인은 고향이 황해도 배천이었다. 아버님이 배천 온천장 주인이셨고, 온천장에서 조기재배되는 야채나 과일 같은 것을 남대문시장에 가져다가 팔고 해서 대단한 부자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멜론이라는 고급 과일을 그때 처음 선사받기도 했다. 38선이 완전히 굳어지기까진 이렇게 산호장은 아주 고급한 서적들만 출판을 했었다.
그날 나는 장 시인에게 인계되었다. 오후였다. 그 길로 나는 장 시인의 집, 회현동으로 동반되었다. 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이층집이었다. 일본인이 살던 그러한 가옥으로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층 서재로 안내되었다. 이층 서재에 가득 차 있는 문학서적들, 이곳엔 편석촌의 서재와는 달리 일본 서적들이었다. 간혹 도쿄 유학시절에 낯이 익었던 일본 작가들의 이름들이, 시인들의 이름들이 쭉 꽂혀 있는 서가들이 방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헤르만 헤세의 전집도, 역시 문학하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많은 책들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 부끄러움이 다시 들었었다. 참으로 많은 일본어 문학서적들이 새것으로, 신선하게, 가득히, 쌓여 있었다.
시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전연 모르는 이야기들, 장 시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것으로 추진이 되었다. 책의 장정만은 편석촌이 추천한 김경린(金璟麟) 시인이 맡기로 했다.
저녁이 들어왔다. 부인이 손수 상을 들고 올라왔다. 미인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신석정(辛夕汀) 시인의 누이동생이었다. 한 시간 동안 주로 장 시인이 말을 계속했다. 장 시인은 실로 다정다감, 시인 기질이 너무나 왕성하였다. 때문에 때론 감정적이고, 때론 인정이 과잉하고, 때론 소녀처럼 센티멘탈하고, 때론 노여움을 많이 타고, 때론 배타적이고, 때론 너무나 기분적이고, 때론 너무나 과민하고 그래서 때론 너무나 오해 같은 것도 많이 했었다. 대단히 정이 헤픈 기질을 타고난 시인이었다. 타고난 부자집 아들의 기질, 그리고 타고난 서정시인의 기질이었다. 기실 장 시인은 돈을 잘 알면서도 돈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남에게 싫은 말, 싫은 부탁, 싫은 신세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남의 일 잘 봐주는 친절하고 다정한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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