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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억
잊어 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 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詩想노트
이 시는 여러 작곡가가 작곡을 해서 여러 성악가가 불러오는 나의 초기 시입니다. 제1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1949.7)에 실려있는 시입니다.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나는 해방 직후 나의 인생 진로에 있어서 참으로 많이 방황을 했습니다.
그 큰 꿈의 좌절에서 오는 고독과 소외와 암담과 쓸쓸함,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시작을 하는 것이다. 과거는 모조리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을 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던 우월감도 다 버리고, 내게 새로 생긴 좌절감도 잊어버리고, 모든 것 다시 시작을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어제, 그 과거를 잊어버리자는 생각에서 이 시를 썼던 겁니다.
인생의 재출발, 그 암담한 날의 추억이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월미도(月尾島)에 자주 나갔었습니다. 큰 바다를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월미도 바닷가를 걸으면서 즉흥적으로 이 시가 나와 버렸습니다. 지금 이곳에 수록하는 시는 그때 그대로의 개작이 없는 원시입니다.
그때 그 무렵에 있어서 나의 정신의 바다는 푸른 물결 치는 넓은 여름 바다가 아니라 음산하게 흐린, 물결치는 겨울 바다였습니다.
소라, 추억, 겨울 바다 등등의 시들이 이 무렵 나의 위로처럼 쏟아져 나왔었습니다.
친구들도 없는 학교, 동창들도 없는 학교를 나왔었기 때문에 더욱 외로웠습니다.
좌익이다, 우익이다, 중간이다 하는 한국적 사상판에서. 이데올로기 그 판국에서.
소라처럼 외롭게, 물결처럼 외롭게, 추억처럼 외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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