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558호 백스무번째 서신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8-05-09 13:46
조회수: 103
 


  벌써 꽃들이 지고 신록으로 접어드는 계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이 편지를 씁니다.
  화사한 꽃 계절이 지나고 보니 웬일인지 허전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또 일 년 기다려야만 그 꽃들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세월 참으로 빠르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조각가 이영학(李英鶴) 씨가 동으로 만든 내 두상(頭像)을 찾아왔습니다. 한 십사오 년 전에 백문기(白文基) 조각가가 역시 두상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때와는 달리 왠지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허상을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이 왠지 지저분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말없이 흔적 없이 떠나는 것이 오히려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써온 실로 무수한 시편들이 남부끄럽게도 생각이 되어, 실로 이 세상을 많이도 더럽히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겁니다.
  그 많은 시집들, 시들, 그 중에서 몇 시집, 몇 시들이 살아남을까하고 생각해 보니, 내 자신이 초라해 보입니다.  참으로 많이도 철모르고 남부끄러운 시들을 써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당신 앞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들고 보니, 예술 창작 작품들은 한편 많은 부끄러움을 안고 있는 정신적 모험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내부적으로 큰 수치감을 안고 걸작을 만들어 내야겠지요.
  그 수치감을 이겨 낼 수 있는 걸작, 수작을 만들어 내야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영학 씨가 만들어 준 내 두상, 그 허상을 바라다보고 있습니다.
  오는 십구일 일요일에는 충북 충주 부녀문학 클럽에서 난실리 편운재를 예방해 준답니다. 그날에는 라일락꽃이 한참이겠습니다.
  그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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